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AP=연합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AP=연합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미국 경제가 더블딥(double dip)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더블딥이 현실화되면 지난 1980년대 2차 석유파동 이후 40년 만이다.

더블딥은 불황에 빠졌던 경기가 단기간의 회복 후에 다시 불황에 빠지는 상태를 말한다. 이중침체 또는 W자(字)형 불황이라고 한다. 더블딥이 위험한 이유는 증시의 폭락 가능성 때문이다. 그나마 거품을 지탱하던 것이 경기 반등에 대한 기대감인데, 더블딥은 이를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지난 3일 미국 경제가 더블딥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의 연착륙을 원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대와 달리 경착륙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회조사국은 ‘미국 경제가 연착륙, 경착륙, 스태그플레이션 가운데 어디로 가는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연착륙 가능성은 적다고 내다봤다.

의회조사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상당한 규모로 빨리 없애려면 실업률이 상승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연착륙보다 경착륙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1950년대 이후 장기간 기준금리를 올리면 경기 후퇴가 발생했다"며 "인플레이션이 높고 실업률이 낮다는 것은 수요가 너무 많다는 증거이며, 이 같은 상황에서 경착륙하지 않고 수요를 줄이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회조사국은 미 연준이 이 같은 경착륙 우려 때문에 기준금리를 신속히 올리지 않을 경우 물가 상승 속의 경기 후퇴, 즉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퇴양난’인 것이다.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지면 증시는 최악의 형국을 맞을 공산이 크다. 실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일 "최악의 상반기를 보낸 글로벌 금융시장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실이 있다는 말인 셈이다.

뉴욕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올들어 6개월 간 21% 급락해 1970년 이후 52년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특히 위험자산으로 꼽히는 기술주와 암호화폐 가격의 낙폭은 역대급으로 컸다.

한국 경제도 타격을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시장에서는 R(Recession)의 공포 , 즉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1%에서 2.6%로 하향 조정한 상태다. 정부 지출을 제외하면 경제성장률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2% 내외였고, 현재 는 장기 저성장 국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내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1% 이하가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R의 공포가 현실화되면 국내 증시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의 타격을 입게 된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코스피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4조3009억원에 머물렀다. 이는 2020년 2월 일평균 거래대금 3조7020억원 이후 가장 적은 것이다. 특히 지난해 6월의 11조4018억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3분의 1토막이 난 것이다.

수익률 역시 마찬가지.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말 2977.65에서 지난달 30일 2332.64로 올해 상반기에만 21.66% 하락했다. 상반기 기준으로 보면 지난 1990년의 -22.31% 이후 32년 만의 최대 하락률이다.

주요 20개국(G20)의 대표지수 가운데 수익률이 코스피지수보다 낮은 것은 이탈리아의 FTSE MIB 지수(-22.13%) 뿐이다. 코스닥지수 역시 상반기에 30% 가까이 빠졌다.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동학개미만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 역시 ‘곡소리’가 나고 있다. 지난 상반기 중 서학개미가 가장 많이 매수한 테슬라의 주가는 지난해 말 1056.78달러에서 지난 1일 681.79달러로 35.48% 하락했다.

특히 서학개미의 순매수 1~10위 종목 가운데 4개가 초고위험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인데, 이들 레버리지 상품의 수익률은 -30%에서 -80%에 달할 만큼 처참하다.

한마디로 국내 증시와 글로벌 증시의 동반 하락에 동학개미와 서학개미 모두 눈물을 흘린 셈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더블딥이나 R의 공포가 도래하면 시장 상황은 더욱 암울해질 가능성이 높다. 증시판을 떠나는 개미들이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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