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폭파, 김정일이 친필 비준한 작전”
“KAL기 폭파, 김정일이 친필 비준한 작전”
  • 마이클 리
  • 승인 2019.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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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부 독자수사결과로 밝히는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 [3]

 

김현희
김현희

김현희는 그 당시 26세, 발랄하고 무성한 청춘의 좋은 시절을 보내야할 그 나이에, 국제 테러리스트라니! 그의 범죄를 따지기 전에는 일단 그도 우리의 귀여운 딸이다. 누가 그를 저렇게 비참하게 만들었나. 북한은 여러 면에서 국가라고 보기에는 오히려 광신도 집단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절대독재자 (교주)가 명령을 하면 신도들은 앞뒤를 따지지 않고 신명을 다 바쳐 따라야한다. 과거에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cult 집단 (일인숭배 광신도집단)이 그러했다. 북한은 절대로 설득이나 타협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며 결국에는 파멸로 끝나는 사람들이었다.

북한의 김씨 왕조 독재집단이 바로 그런 집단이며 생명을 걸고 그를 추종하는 인민이 약 300만 정도나 되며 나머지는 저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노예 노동자들이다. 남한에도 김정은 독재집단을 동조하는 얼빠진 인간들이 약 500만 정도라고 하니 참으로 통곡할 일이다.

북한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위한 동상이나 조형물이 약 35,000개나 된다고 하며 유네스코의 보고에 의하면 남북한이 통일이 되어도 이 더러운 조형물을 제거하는데 약 10-15년이 걸린다고 한다. 김현희도 태어나서부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희생물이며 그가 깨닫고 뉘우치기 전까지는 수많은 동족의 생명보다 김정일의 악독한 계략을 절대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이다. 그런 체제 밑에서 아리따운 처녀 김현희가 무시무시한 국제 테러리스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한 번 짚어보겠다.

◇김현희, 1962년 1월 27일 외교관 장녀로 출생

일본 주간지 ‘요미우리 위클리’가 신년호에서, 김현희가 지난 1972년 11월 북한을 방문한 한국대표단을 환영하기 위해 화환을 들고 평양의 헬리콥터 이·착륙장에 나와 대기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새로 발굴·보도한 사진. 이 주간지는 ③번 소녀가 김현희라고 밝혔다. 1987년 발생한 대한항공858기 폭발사건 직후에 한국의 국가안전기획부가 어린 시절 김현희라고 밝힌 소녀는 이 새 사진의 ②번 소녀로 보인다. /요미우리 위클리
일본 주간지 ‘요미우리 위클리’가 신년호에서, 김현희가 지난 1972년 11월 북한을 방문한 한국대표단을 환영하기 위해 화환을 들고 평양의 헬리콥터 이·착륙장에 나와 대기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새로 발굴·보도한 사진. 이 주간지는 ③번 소녀가 김현희라고 밝혔다. 1987년 발생한 대한항공858기 폭발사건 직후에 한국의 국가안전기획부가 어린 시절 김현희라고 밝힌 소녀는 이 새 사진의 ②번 소녀로 보인다. /요미우리 위클리

김현희는 1962년 1월 27일 평양시 동대원구역 동신동에서 아버지 김원석 어머니 임명식의 2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1963-1967년에는 쿠바주재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하바나 에서 살았다. 1968년 9월에 평양시 서성구역 하신동 하신인민학교에 입학, 재학 중에는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했다.

1972-1977년 평양 중신중학교에 재학, 중1때 또 아역으로 영화에 출연했다. 1977년 8월 김일성 종합대학에 입학, 예과 1년 마치고, 1978년 9월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과에 입학했다. 1980년 3월 외국어대학 2학년 때 3차의 면접시험을 거쳐 당에 소환되어 중앙당 대외정보조사부 공작원으로 그의 슬픈 운명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여러 비밀 초대소에서 밀봉교육을 받았고, (1980/4-1981/4)에는 금성정치군사대학 (공작원양성소) 에서 체계적인 대남공작 기초교육을 받았다. (1981/4-7)에는 남한실정 교육을, (1981/7-1983/3)에는 일본어와 일본인화 교육을 받았다. 1982년 4월 13일 노동당에 입당했다.

(1983/3-1984/7)에는 본격적인 공작원 실무교육을 받았고, (1984/8-10)에는 당시 70세가량의 노인 김승일과 배합, 김승일은 <하지야 신이찌>로 김현희는 <하지야 마유미>로 일본인 부녀로 위장, 임무수행 훈련을 시작했다,

1984년 8월 15일 두 사람은 담당지도원 1명과 함께 평양을 떠나 모스코, 부다페스트, 비엔나, 코펜하겐, 프랑크푸르트 까지 여행, 담당지도원은 마카오로 가고 김승일-김현희 조는 쥬리히, 제네바, 파리로 갔다. 9월 20일 파리에서 김승일은 서울로 가고 김현희는 방콕, 홍콩을 거쳐 마카오로 갔다. 9월 26일 담당지도원과 김승일과 김현희가 마카오에서 다시 합류했다. 그리고 김승일-김현희 조는 중국 광주와 북경을 거쳐 평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이번 해외여행에서 3만 3천 달러를 사용했다.

◇일본어와 중국어 교육

북한 컴퓨터 교육
북한 컴퓨터 교육

(1985/1-6)에는 평양 용성 5호 초대소에서 중국어 교육을 받고, (1985/7-1986/8)에 김현희는 김숙희와 한 조가 되어 중국 광주에서 현지실습과 북경어와 광동어 실습을 했다. 두 사람은 평양중앙방송에서 발신되는 암호통신을 수신하여 해독하는 실습도 했다.

(1986/8-1987/1) 위 두 사람은 마카오로 옮겨 명주대 아파트 1동3층 A호실에 살면서 <하지야 마유미>와 <다가하시 게이고>로 된 위조일본여권을 사용했다. 여기서도 그들은 평양에서 발신되는 암호통신을 해독하는 실습을 계속했고 미용실, 은행, 영화관, 환전소, 택시 등 자유세계에서의 편의시설 이용법을 익혔다.

(1987/2-9) 평양에 돌아가 용성 43호 초대소에서 사상재무장 교육을 받고 4월 15일에는 김현희가 가족을 만나러 휴가를 갔다. 이것이 김현희가 부모를 만나는 마지막일 줄을 누가 예측했겠는가. (1987/9-10) 마카오 이민국에서는 대륙에서 밀입국한 난민들에게 영주권을 준다는 뉴스를 접하고 김현희와 김숙희가 다시 마카오 인접도시 광주로 파송되었다.

김현희는 마카오에 잠입하여 우잉 (吳英)이란 흑룡강성의 실존인물 이름을 도용하고 출생과 가족관계 등 구체적인 내용을 사전에 암기하고 있다가 마카오 영주 신분증을 쟁취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나 1987년 10월 4일 김현희는 단독으로 귀국하라는 급한 지시를 받고 10월 7일 평양에 도착했다. 중요한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조선 비행기를 제끼라”

김승일과 김현희

1987년 10월 7일 밤8시 동북리 초대소에서 김승일과 김현희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대외정보조사부의 최고 간부로부터 공작임무를 받았다. 두 사람은 일본인으로 위장하고 여행하면서 “남조선 비행기를 제끼는 것” 이라고 했다. 목적은 88올림픽을 앞두고 “남조선 괴뢰의 2개조선 책동을 막고 적들에게 큰 타격을 주기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 후 그들은 담당 지도원들과 함께 5일간 동북리 초대소에서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토의했다. 공격 목표는 1987년 11월 28일 바그다드 발 아부다비 경유 서울행 대한항공-858기였다. 이때 김승일이 이의를 제기했다.“중동에 이란-이라크 전쟁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그 지역 공항검문검색이 철저하다”고 했다.

그러나 조사부 최 과장이란 사람이 이를 묵살하고 “이 임무는 김정일 동지의 친필비준이 난 계획임으로 수정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조사부 테러담당 전문가 4인이 한 달간의 연구토론 끝에 최종확정한 작전계획은 이러했다.

[1987년 11월 12일 김승일 김현희 공작조 평양출발, 11월 14일 모스코에서 부다페스트로 이동, 부다페스트 아지트에 4박5일간 체류, 비엔나로 이동 6박7일 체류, 비엔나에서 비엔나-베오그라드-바그다드-아부다비-바레인 행 항공권 구입, 아부다비-바레인은 위장 루트이고 그들은 별도로 아부다비-암만-로마행 비행기 표를 구입할 것.

◇베오그라드 메트로폴리탄호텔서 시한폭탄 인수

11월 24일 비엔나에서 베오그라드로 이동 4박5일 체류 중 11월 27일 메트로폴리탄 호텔에서 임무담당 과장과 지도원을 만나고 비행기 폭파용 시한폭탄 인수, 11월 28일 베오그라드 출발 바그다드 도착, KAL-858기 탑승직전에 시한폭탄 (트랜지스터 radio)을 정확히 9시간 후에 폭발하도록 작동시킬 것, 11월 28일 23:45 바그다드에서 KAL-858기 탑승, 시한폭탄을 비행기 선반에 둔 채 아부다비에서 내릴 것.

11월 29일 02:50 아부다비공항 도착 후 현지이탈, 바레인으로 가지 말고 11월 29일 09:00 이탈리아 항공편으로 로마로 갈 것. 로마 도착 후 2박3일 관광하고 12월 1일 11:00 이탈리아 항공편으로 비엔나로 빠지고 즉시 평양으로 돌아올 것.]

이와 같은 작전계획에 따라 11월 10일에는 동북리 초대소에서 격려 및 송별을 위한 파티가 있었다. 11월 12일 아침 6시30분경, 김승일과 김현희는 폭파담당 지도원들과 더불어 조사부 부부장 <이용혁>이 지도하는 대로 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세문을 낭독했다.

[전략 - “생명의 마지막까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높은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지켜 싸우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08:30 순안 비행장을 떠나 모스코로 갔다.

gw2021@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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