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N 다큐 제작...'철기 해상 실크로드'에 이동 경로 남아

‘과학으로 본 허황옥 3일’, 2천년 전 김해 가락국으로 시집온 허황옥 뱃길을 규명하는 다큐멘터리가 15일 저녁 KNN에서 방영됐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서기 48년 16세 때 바다를 건너 김해 김씨의 시조 가락국 김수로왕과 결혼했다고 전한다.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10남 2녀 중 아들 두 명이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았다. 김해 허씨의 시조다. 허황옥의 바닷길을 ‘철기 해상 실크로드’로 보는 이 다큐는 인도~한반도에 이르는 철기의 이동 경로에 ‘가야’ 내지 이 지명의 흔적이 상당히 남아 있음을 밝혀냈다.

아시아에서의 제철 확산 경로. /Wikimedia Commons 유라시아 지도 위에 이진아가 표시
아시아에서의 제철 확산 경로. /Wikimedia Commons 유라시아 지도 위에 이진아가 표시

한편,『허황옥 루트-인도에서 가야까지』는 허황옥의 행로를 메소포타미아~인도·중국~한반도에 이르는 ‘쌍어(雙魚)신앙’의 고고학 탐사과정으로 설명한다. 한양대학교 김병모 명예교수, 우리 민족의 기원 을 추적해온 문화인류학자의 40 여년 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2008년 나왔으나 더욱 의미 있는 시대를 만났다. 남한 북한 할 것 없이 단일민족 신화가 뿌리 깊고 ‘우리민족끼리’에 쉽게 감화되는 한국인들의 역사 통념을 극복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김수로왕비가 된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혼인길과 메소포타미아~인도 중국~ 한반도에 이르는 ‘쌍어 신앙’, 이를 추적한 고고학 탐사 여정을 담았다. (김병모, 역사의 아침. 2008)
김수로왕비가 된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혼인길과 메소포타미아~인도 중국~ 한반도에 이르는 ‘쌍어 신앙’, 이를 추적한 고고학 탐사 여정을 담았다. (김병모, 역사의 아침. 2008)

문화인류학·고고학자 김병모의 ‘쌍어 신앙’ 연구는 허황옥의 고향과 중국·네팔·파키스탄·영국·독일·미국·이란 등지를 답사하며 40여 년간 계속됐다. 김 교수에 따르면 쌍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지중해로부터 한반도까지 퍼져 있다. 아시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스키타이·간다라·마가다·운남·사천·가락국·야마다이고쿠(일본 邪馬坮國) 등지에 걸친 광범한 내륙지방을 오가던 사람들에게, ‘쌍어’는 만물의 수호신이었다. 가야 김수로 왕릉 대문에 그려진 물고기 한 쌍, 신어(神魚)로 불리는 이 물고기는 인도식 탑 같은 물체를 마주 보고 있다. 그 근처 왕비의 무덤 비석엔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릉’이라고 적혀 있다.

아유타국은 기원전 7세기경 아리아족이 세운 인도 코살국의 중심 도시 아요디아다. 전란 때문에 지배층과 지식인들이 동쪽으로 이동해 지금의 중국 사천성 안악현(보주 普州)에 자리 잡았으며, 거기서 태어난 허황옥이 서기 47년 황해를 건너 가락국으로 왔다고 본다. 김 교수는 안악현 내 보주 허씨들의 집성촌, 허씨네 종산(宗山) 암벽에 새겨진 ‘신정(神井)’에서 ‘허황옥’ 이름을 발견한다. 『후한서』에 따르면 ‘허’는 직업적 세습 샤먼(무사巫師)의 명칭, 즉 신부·목사·승(僧) 같은 종교적 칭호다. 힌두교의 브라만처럼 존경받는 세습신분의 칭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보주 땅의 ‘허’는 중국으로 이주한 인도인의 후예로 보인다. 보주에 뿌리를 내린 이후에도 쌍어문을 그려넣은 사원에서 쌍어문 문양의 그릇으로 의식을 행하는 등 인도식 신앙생활을 이어간 것으로 추측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한 ‘쌍어 신앙’은 바빌로니아 시대까지 왕권의 상징으로 유행하다가 지중해와 페르시아로 퍼져나갔다. 박해시대의 초기 기독교인들에겐 서로를 확인하는 (물고기)아이콘이 된다. 나아가 ‘쌍어신앙’은 기마민족 스키타이를 통해 중앙아시아 전역과 알타이 산악지대의 유목민들에게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토착신앙과 섞이며 인도 대륙에 흡수됐고, 그것이 힌두교와 불교에 스며든 것이다. 기원전 8세기~3세기 중앙아시아을 지배한 스키타이족은 타고 다니던 말의 이마에 쌍어문 부적을 달았고 말안장 장식도 했다. 이 전통이 오늘날 파키스탄 간다라 지방의 자동차에 그려진 쌍어문과 연결된다.

‘쌍어신앙’은 인도인 이민에 의해 중국의 운남·사천 지방으로 퍼졌고, 라마교를 통해 몽골의 초원 민족에게 전달됐다. 한편 사천 지방에서 한국으로 이동한 허황옥 일행이 ‘쌍어 신앙’을 가져왔고, 이를 일본 열도에 전한 사람들은 가락국 출신 이민자들이었다. 인류 문명사가 하나로 엮여 있음을 일깨워주는 흥미로운 지식이다. 단일민족이란 ‘갈라파고스’가 된 오지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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