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펄


사내는 거친 숨 토해놓고
헛기침 두어 번 뱉어내놓고는 성큼,
큰 걸음으로 저녁을 빠져나간다
팥죽 같은 식은땀 쏟아내고 풀어진
치마말기 걷어올리며 까닭 없이
천지신명께 죄스러워 울먹거리는,
불임의 여자, 퍼런 욕정의 사내는
이른 새벽 다시 그녀를 찾을 것이다
냉병과 관절염과 디스크와 유방암을
앓고 있는 여자, 그을음 낀 그녀의 울음소리
아내가 되어 낮고 무겁게 마을을 덮는다
한때 그 누구보다 몸이 달고 뜨거웠던
우리들 모두의 여자였던 여자
생산으로 분주했던 물기 촉촉한 날들은 가고
메마른 몸속에 온갖 질병이나 키우며
서럽게 늙어 가는. 폐경기 여자
그녀는 이제 다 늦은 저녁이나 아른 새벽
지치지도 않고 찾아와 몸을 탐하는
사내가 노엽고 무서워진다
그 여자가 내민 밥상에서는 싱싱한
비린내 대신 석유내가 진동을 한다

이재무(1958~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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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피서철이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가까운 서해 바다를 등지고 먼 동해 바다를 찾는다. 서해안 검은 개펄보다 푸른 파도 넘실대는 동해안 모래톱에서 바다를 만끽하고 싶은 것일 게다. 시원스레 펼쳐진 모래톱에는 생물들이 별로 없다. 하지만 개펄에는 조개류를 비롯해서 낙지, 김, 굴 등 다양한 생물들이 산다. 천연기념물 저어새를 비롯해 백여 종의 물새도 개펄에서 산다. 경제적으로 따져보아도 개펄의 보존가치는 크다. 개펄에서 얻는 수익이 간척으로 기대되는 수익의 수배에 이른다. 그런 개펄이 방조제 축조와 오염물질 유입으로 빠르게 죽어가고 있다. 죽은 개펄은 더 이상 생물들을 키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연정화조 역할도 못한다.

시인은 이처럼 죽어가는 개펄을 ‘냉병과 관절염과 디스크와 유방암을 앓고 있는, 메마른 몸속에 온갖 질병이나 키우며 서럽게 늙어 가는 폐경기 여자’로 비유했다. 그 ‘여자가 내민 밥상’, 그러니까 죽은 개펄에서 잡은 어패류에서는 ‘싱싱한 비린내 대신 석유내가 진동을 한다’. 오염된 바다는 ‘퍼런 욕정의 사내’처럼 밀물 때 어김없이 찾아와 몸을 덮치지만 병든 여자는 저항할 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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