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수
전광수

지난 6월 30일, 경기도 수원의 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친구와 싸우다가 이를 제지하고 타이르던 여교사를 흉기로 위협했다. 옆에 있던 다른 반 남성 교사가 학생을 옆 회의실로 데려가 진정시켰지만, 회의실 책상의 유리를 손으로 내리쳐 깨뜨린 뒤에야 흥분을 가라앉혔다고 한다. 학생·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기까지 했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가장 고도의 권위’라 할 수 있는 전문지식의 영역까지 무시된 가장 단적인 예는, 코로나19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이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 등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권고를 모두 무시해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치며 ‘정치방역’이라 비난받았다.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감염원 차단이다. 이는 중세부터 사용된 방법으로, 미국의 저명한 과학지 ‘사이언스’에서도 코로나19는 차단이 가장 효과적인 방역 대책이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위의 두 사례는 ‘사회적 권위’가 붕괴 혹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권위에 기대보자면, <전문지식의 죽음>(The Death of Expertise)의 저자 톰 니콜스는 "인터넷의 확산으로 누구나 똑똑하다고 생각하다보니 전문가(권위자)들의 의미 있는 조언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요즘 사람들은 ‘당신이 틀렸다’는 얘기를 ‘당신은 멍청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내 의견에 상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모욕감을 느끼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으레 속좁은 사람으로 치부한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이나믹하다고 한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목소리가 제일 크다는 자칭 민주화 세력의 평등 강조가 ‘모든 의견이 동일하다’라는 것으로 오해되어, 모두가 ‘방구석 전문가’ 혹은 ‘우리 집 골목대장’이 된 탓이다. ‘권위’가 ‘권위주의’라는 부정적 의미와 혼용되는 이유도 클 것이다. ‘권위’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말한다. 반면 ‘권위주의’는 어떤 일에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복종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변호사들은 법정에 들어설 때 재판부석을 향해 고개 숙여 예의를 표한다. 판사의 연령, 경력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 대상이 판사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권위에 대한 것이며 나아가서는 사법부와 대한민국의 헌법을 존중하는 것이다. 권위주의는 스스로 내세우는 것이지만, 권위는 수용자의 자발적 존중으로 이루어진다. 권위가 흔들리는 것은 상호 존중할 줄 모르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성숙하고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다양한 권위가 공존하기에 기본적으로 상호존중이 선행된다. 이미 혼란한 시기에 접어든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흐를 것인지,국민적 의식 개선과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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