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주동식

지난 4월 검수완박 문제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던 당시, 민주당은 자기 당 출신 양향자 의원을 국회 법제사법위에 보임했다. 여야 3 대 3 동수로 구성된 안건조정위의 의결정족수를 무력화시켜 국민의힘 저항을 원천 차단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양향자 의원은 검수완박 강행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히며 친 민주당 대열에서 이탈했다. 강행 처리 반대 입장문까지 작성한 양향자 의원은 "어떤 민주당 의원은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도 하더라"고 밝히기도 했다.

양향자 의원이 이탈한 자리를 채운 것이 민형배 의원이었다. 법사위 소속이던 민형배는 갑자기 탈당, 스스로 무소속이 되어 야당 몫 조정위원이 됐다. 그리고 4월 26일 안건조정위에서는 검수완박 법안 중 하나인 검찰청법 중재안이 민주당 3명에 민형배까지 가세한 4명의 찬성으로 8분 만에 통과됐다.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인 본회의 통과는 요식절차일 뿐이었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통과를 위해 동원하려고 한 양향자·민형배 두 의원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치권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건 두 의원 모두 광주광역시의 민주당 소속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서해 피살 공무원 이대준 씨의 친형인 이래진 씨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씨에 의하면 이대준 씨 피살 일주일 뒤 민주당 황희·김철민 의원 등이 찾아와 "(고향이) 호남이니 같은 편 아니냐" "월북을 인정하면 기금 조성해서 보상해주겠다"며 달랬다고 한다.

"호남이니 같은 편 아니냐." 이 한마디에 민주당이 왜 굳이 양향자·민형배 의원을 골라서, 여론의 거센 반발을 샀던 검수완박 통과를 위한 총알받이 역할을 맡겼는지 이유가 드러난다. 민주당에게 호남이란 정치적 호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증거다. 강고한 좌파 이념으로 다른 정치세력의 호남 접근을 차단하고, 호남시민들을 가두리 양식장 안 어류처럼 가두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낚아가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2002년 노무현의 당선 당시부터 좌파가 손쉽게 권력을 쥐는 필승공식으로 자리잡아왔다. 영남 출신 대선후보를 내세워 호남에 대한 거부감을 우회하고, 호남의 소외의식을 자극해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 루틴이었다. 이 거래에서 호남의 몰표는 당연한 전제조건이었다.

이 구도에서 호남도 적지 않은 수혜를 입었다. 호남 출신들이 정부나 공공분야 그리고 대형 민간기업의 고위직으로 가는 사례가 우파 권위주의 정권 시절보다 훨씬 많아지고 지역 예산도 늘어났다. 호남 시민들이 노무현이나 문재인 정권을 ‘우리 호남 정권’이라고 생각하게 된 배경이 이것이었다.

물론 이런 구조는 영남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영남의 그런 지역패권주의적 행태를 호남이 배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는 겉모습이 비슷할지 몰라도 그 내용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영남 지역주의는 패권적 속성으로 인한 폐해도 컸지만 그래도 결정적으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성과를 이룩해낸 당사자였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건국과 산업화라는 성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반면 호남의 민주화는 언제부터인가 좌경화로 이탈하는 파행이 노골화되고 있다. 검수완박과 이대준 씨 피살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는 이런 우려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자칫하다가는 민주화 성과까지 부정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생긴다.

문재인 정권은 호남과 좌파의 결합으로 탄생했다. 지난 5년은 이런 구도가 얼마나 심각한 국정파탄을 초래하고 심지어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이래서는 안된다. 호남의 지식인과 민주시민들의 인식의 대전환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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