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근 경총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제단체 임원들이 14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방문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가 이번 12월 임시국회에서 다수의 노동 법안을 충분한 논의 없이 강행 처리하려고 한다고 지적하며 즉각적인 중단을 박대출 환노위원장에게 요청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반원익 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 이태희 중기중앙회 상무, 이 부회장, 이관섭 무역협회 부회장. /연합
이동근 경총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제단체 임원들이 14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방문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가 이번 12월 임시국회에서 다수의 노동 법안을 충분한 논의 없이 강행 처리하려고 한다고 지적하며 즉각적인 중단을 박대출 환노위원장에게 요청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반원익 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 이태희 중기중앙회 상무, 이 부회장, 이관섭 무역협회 부회장. /연합

내년 대선을 앞둔 ‘선거의 계절’에 노동법 개정안이 쏟아지고 있다. 노동계의 표(票)를 의식한 정치권의 조급한 행보가 국가 경제를 격랑에 휩쓸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5인 미만(4인 이하) 영세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하는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노동계의 오랜 요구 사항인 이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본격적인 논의 테이블에 올린 것이다.

법안소위에서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와 타임오프제 역시 심의하게 되지만 소상공인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공공기관의 이사회에 들어가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또 타임오프제는 노조 전임자의 근로시간을 면제해 노조활동을 하면서도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16일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와 타임오프제 도입 관련법의 12월 임시국회 내 처리를 확인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야당의 반대 기류로 통과 여부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하지만 야당이 불참하거나 법 개정에 반대할 경우 다수 의석을 활용해 강행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만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고나 부당 전보에 대한 제한, 노동시간 및 연차·공휴일, 연장·야간·휴일수당 등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경영 부담을 지우지 말자는 취지다. 실질적으로 단속이 어렵다는 점도 감안됐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소상공인은 연차 유급휴가, 연장근로수당 등 막대한 비용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치솟은 최저임금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어 또 다른 대형 악재를 맞딱뜨리게 되는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9160원으로 지난 2017년의 6470원 대비 41.5% 뛰었고, 코로나19에 이은 오미크론의 출현으로 매출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연차 유급휴가, 연장근로수당 등의 부담이 추가되면 최저임금을 적용한 4인 고용 사업장은 연간 1500만원 이상 추가 임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임금 상승과 연계되는 퇴직금, 4대보험 비용까지 감안하면 경영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모두 준수할 만한 여건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이 때문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소상공인의 잇따른 폐업과 함께 일자리만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5일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까지 유행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다"며 "국회의 무리한 입법 추진은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근로자들을 고용 불안에 시달리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검토 보고서 역시 "근로자 보호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한 채 오히려 영세 사업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행정적 부담만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상공인의 월평균 영업이익은 275만원 수준으로 임금근로자 월평균 소득 297만원보다 낮다. 소상공인 대부분이 열악한 상황에서 경영을 하고 있는데, 근로 조건만 상향시킨다고 실효성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기준으로 전체 사업장 가운데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비중은 80%에 달한다. 종사자 수는 604만명으로 전체 종사자의 26.6%를 차지하고 있다. 영세 사업장의 경영 악화가 전체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기 쉬운 구조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이 소상공인 대다수를 범법자로 내몰 것이라고 경고한다.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려면 소상공인들이 추가로 부담하게 될 비용에 대해 지급능력 실태조사 등 논의를 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와 타임오프제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밝혀 여야 합의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표 앞에서는 정체성도 원칙도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경제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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