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2대째 강화읍서 내과병원, 남궁 호삼 원장
[PEOPLE] 2대째 강화읍서 내과병원, 남궁 호삼 원장
  • 최영재 기자
  • 승인 2019.04.1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궁내과의원 남궁호삼 원장

“여러분들에게는 위대한 의사(great doctor)와 좋은 의사(good doctor)가 되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위대한 의사는 의학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 정작 환자가 필요한 의사는 ‘굿 닥터’다. 여러분은 위대한 의사 말고 ‘굿 닥터’가 되세요”

대를 이어가는 명의인 강화읍 남궁내과의원 남궁호삼 원장이 고려대 의과대 재학 시절 깊은 울림을 주었던 한 교수님의 강의 내용이다. 뛰어난 의술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따뜻한 의사’라는 메시지는 의사 남궁호삼에게 평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환자나 보호자는 믿고 상의할 의사를 원해요. 강화로 돌아올 때 몸이 아픈 주민들의 첫 번째 의논상대가 되자고 다짐했죠. 몇 달 후에 드디어 ‘남궁원장은 좋은 의사’라는 칭찬을 들었어요. 그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남궁 원장은 원래 강화에서 병원을 열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인 남궁 택 원장을 본받아 의사가 되었지만, 원래는 생리학 교수를 꿈꿨다고 한다.

◇강화 땅서 500년 넘게 유학 공부하던 선비가문

남궁의원 앞에 선 부친 남궁택 원장

“저희 집안은 500년 넘게 강화 땅에서 유학을 공부하던 선비 가문이에요. 아버지는 경성제대 의대를 입학해서 해방 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셨어요. 졸업하던 해 6.25전쟁이 났고, 피난 중에 어머니를 만나셨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강화고등학교 교사로 몇 년 근무하셨죠. 그러다가 1962년 솔터우물 앞(현 중앙시장 A동) 동진직물 사무실을 임대해 남궁의원을 개업하셨는데요. 삼도직물 김재소 사장님이 무이자·무담보로 거금 40만원을 선뜻 빌려주셨던 덕분이죠. 그리고 2년 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셨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18 의료서비스경험조사’에 따르면 읍·면 지역은 외래진료비율이 69.3%로 도시지역의 61.3%보다 높게 집계되었다. 수도권에 위치한 강화는 전체 인구 6만8천명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30%가 넘는 고령화 지역이다. 이곳은 대도시에 비해 우수한 의료진과 최고설비를 갖춘 병·의원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갑작스럽게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남궁 원장은 존경하는 선배의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향인 강화에서 ‘굿 닥터’가 되기로 결심한다. 남궁 원장은 부친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동진직물 사무실을 임대했던 최초의 남궁의원개업식(사진은 남궁호삼원장 어머님)

“아버지야 말로 ‘진짜 의사’였습니다. 불의는 절대 못 참는 불같은 성격이었지만, 새벽 2시라도 환자가 찾아오면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진찰하셨죠. 또 평생 공부하는 의사였습니다. 늘 새벽까지 책을 보다 잠드셨죠. 1950년에 의대를 졸업한 분이, 1980년대에 내과전문의였던 저와 의학용어로 대화를 나눴으니까요. 졸업하고 10년 넘가면 의학용어가 쉽지 않거든요. 50살이 넘은 의사가 한창 자신만만한 젊은 의사와 학술용어로 토론이 가능하다는 것은 평생 공부를 쉬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1988년 고향에 내려온 남궁원장은 의료와 복지 사각지대였던 강화지역의 여러 문제와 부딪히며, 진정한 ‘굿 닥터’는 실천하는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처음 몇 해는 적십자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봉사활동에 나섰고 1993년부터는 본격적인 사회참여에 나선다.

남궁 호삼 원장의 선친 남궁택 원장 진료모습

“1993년에 막 인터넷이 보급되었는데요. 당시 강화는 대도시와 문화 격차가 심한 고장이었거든요. 강화주민들이 정보소외를 겪지 않도록 정보생활화교육에 앞장섰어요. 그러다가 1996년에 ‘석모도 LNG복합 화력발전소 백지화를 위한 시민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죠.

강화사람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5개월 만에 화력발전소 건설을 백지화시켰어요. 이 때 ‘마음을 움직이는 시민운동’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1998년에 ‘강화역사문화연구소’를 세우고 곧 이어 ‘강화시민연대’도 문을 열게 됩니다. ‘강화시민연대’에서 기라성 같은 전문가들과 ‘지속가능한 강화발전’을 탐구했습니다. 덕분에 세상을 보는 관점도 바뀌었습니다.”

아버지(남궁 택 원장)와 아들(남궁 호삼 원장)

◇화력발전소 건설 반대운동

선의의 경쟁과 협력으로 이룬 집단의 지적통합능력, 즉 ‘집단 지성’은 그 지역 고유의 성숙한 시민문화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남궁 원장은 오늘도 강화사람들의 집단지성 활성화를 고민하고 있다. 특히 강화의 농촌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유교문화는 복지 선진국에서 주목하는 ‘따뜻한 공동체’의 요소를 품고 있어 연구 가치고 있다고 그는 믿는다.

동락천 복개하기 전 남궁의원

“송해면 솔정리의 시각장애인 노부부댁에 불이 났어요. 적십자 회장으로서 구호활동을 나갔어요. 가서 보니 이 노부부께서 간이주택에 살고 계시더라고요. 집이 전소되니까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해서 집을 지어준거죠. 일가친척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알고 보니 이 분들을 위해서 평소에도 마을주민들이 매주 반찬을 나눠주고 가을이면 김장도 해주셨답니다. 이 동네 분들이 특별히 착해서 그런 건가 싶어서 독거노인들이 계신 다른 마을도 조사해봤더니 마찬가지였습니다.

농촌 어르신들은 스스로 유학을 실천하고 있다는 자각은 없지만,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가치관을 갖고 계시거든요. 문화로 전승되어 온 유교문명인거죠. 특히 강화는 강화양명학, 즉 강화학파의 고장인데요. 강화에서 꽃을 피웠던 양명학은 오늘날가지 이어져 강화지역 정신문화의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강화 안에서도 강화학파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이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좀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선배 의사인 아버지와 존경하는 스승, 동료들에게서 배운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살고 싶다는 ‘굿 닥터’ 남궁호삼 원장. 그가 고향 강화를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기를 기원한다. 

현재의 남궁내과의원
sopulgo@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덕준 2019-04-13 06:12:29
남궁 호삼 원장님. 고개가 숙연해집니다. 강화도가 원장님 같은 분이 계시니 더욱 훌륭한 땅이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