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왼쪽)와 유족 측 김기윤 변호사가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구속 요청 의견서 및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이영철 전 합참 정보본부장에 대한 직권남용 등 혐의 고발장을 제출하기 전 발언하고 있다. /연합
2020년 9월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왼쪽)와 유족 측 김기윤 변호사가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구속 요청 의견서 및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이영철 전 합참 정보본부장에 대한 직권남용 등 혐의 고발장을 제출하기 전 발언하고 있다. /연합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으로 열린 청와대 관계장관회의 직후 군 당국이 군 정보 유통망인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에서 기밀정보를 무더기로 삭제한 것이 확인됐다.

10일 군 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MIMS에 등록돼있던 정보 중 1·2급 기밀정보를 포함한 40여 건의 정보가 2020년 9월 23일과 24일 사이에 집중적으로 삭제됐다.

2020년 9월 23일은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이 청와대에 보고된 다음날로, 이날 새벽 1시경 청와대에서는 국방부 장관, 청와대안보실장 등 관계장관들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군 당국은 MIMS에서 정보를 삭제한 이유로 민감한 정보가 직접적인 업무와 관계없는 부대까지 전파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기밀정보 원본 삭제에 대해서는 부인했지만, 삭제한 기밀정보의 내용에 대해선 감사원의 감사 등을 이유로 함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기밀정보가 무더기로 지워진 시점이 당시 청와대 관계장관회의 직후인 2020년 9월 23~24일이었다는 점에서 ‘자진 월북’ 추정에 힘을 싣기 위해 그와 반대되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MIMS 내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은 국방부 장관과 합참정보본부장 등 군 정보계통의 최고위급 관리자에게만 주어진다.

이에 여권 측은 당시 청와대의 지시 아래 ‘자진 월북’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끔 그와 배치되는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앞서 국민의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는 지난 6월 24일 국방부를 방문한 이후 중간결과 발표 자리에서 2020년 9월 22일 합참의 최초 청와대 보고에선 오히려 월북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보고서가 올라갔다고 밝혔다.

TF 단장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TF가 열람한 합참 보고서는 당시 조류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있었다는 점과 주변에 어선의 조업이 많았다는 점을 들어 월북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며 "그러다 23~24일 청와대 회의를 거치고 결론이 뒤바뀐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또 "7시간 분량의 북한 통신보고 내용 중 ‘월북’이란 단어는 딱 한 번 등장한다. 그 전후로는 관련 내용이 전혀 없다"며 "월북 몰이를 했다는 단서"라고 지적했다.

군 복무 당시 정보계통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MIMS 내 정보 삭제는 시간이 지난 후 정보로서의 가치가 사라졌거나 기존 정보를 뒤집는 새로운 정보가 등록됐을 때 종종 이뤄지는 일이긴 하지만 이런 삭제조치도 주기를 정해서 정기적으로 이뤄진다"며 "기밀정보를 특정 시기에 이렇게 삭제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국방부를 감사 중인 감사원은 컴퓨터 포렌식 등을 통해 피살 사건과 관련해 최초 보고됐던 정보의 내용이 무엇인지, 삭제 지시가 있었는지 등 당시 기밀정보가 삭제된 정황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삭제된 정보 중 월북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정보들이 포함됐을 경우, 전 정부의 진실 은폐 논란은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감사원 감사와는 별도로 기밀정보가 삭제된 경위를 포함해 삭제 사실이 외부로 유출된 과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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