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비싼 ‘역전세’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집값이 본격적인 조정국면에 진입하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피해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사진은 대구 서구 아파트 전경. /연합
최근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비싼 ‘역전세’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집값이 본격적인 조정국면에 진입하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피해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사진은 대구 서구 아파트 전경. /연합

최근 집값이 약세를 보이면서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웃도는 ‘역전세’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년 간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등 임대차 2법 시행으로 전셋값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집값이 하락하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가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0일 부동산R114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신고된 전국 아파트 매매·전월세 가격을 분석한 결과, 조사기간 내에 매매와 전세거래가 한 번씩이라도 있었던 경우는 총 2만9300건이었다. 이 가운데 해당 주택의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추월한 사례는 7.7%인 2243건으로 조사됐다.

이를 지역별로 보면 지방이 76.4%인 1714건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수도권도 23.6%인 529건에 달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주로 지방 위주였던 깡통전세 위험 단지들이 올해 대선 이후 수도권 쪽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금액별로는 전국적으로 매매가격이 1억원 이하인 저가 아파트가 36%를 차지했다. 저가 주택일수록 매매가격이 전세가격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이 조사한 6월 전세가율, 즉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충남이 78.9%로 가장 높았다. 이어 경북(78.6%), 충북(77%), 강원(76.8%), 전남(75.5%), 경남(75.4%), 전북(74.9%) 등의 순으로 80%에 육박했다. 통상 부동산 업계에서는 전세가율이 80%를 넘으면 추후 집을 팔아도 대출금이나 전세보증금을 충당하기 어려운 깡통전세가 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강원도 원주시 태장동의 C아파트 전용 77㎡는 지난 5월 신고된 매매가격이 6600만원인데, 같은 달 거래된 전세가격은 7000만원으로 더 높다. 경북 포항시 북구 장성동의 D아파트는 지난달 2억7500만원에 매매됐는데, 전세가격도 2억7000만∼2억7500만원에 신고돼 매매가격이 곧 전세가격이었다.

서울과 경기는 조사대상 가운데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높은 경우가 각각 4.5%, 3.4%였다. 서울은 주로 소형 주상복합, 오피스텔,빌라 등에서 역전세난이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계는 최근 2년여 간 서울 곳곳에서 분양가 3억원 이하의 소형 빌라 분양이 많았던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빌라는 2억4000만∼2억5000만원에 전세를 놓으면 자기 돈 5000만원 이하로 소액투자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투자 대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한 중개업소 대표는 "최근 매매가격이 하락하면서 역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집을 팔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되돌려줄 돈이 없으니 대신 집을 사라고 떠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역전세 확산으로 전세보증금의 보증사고도 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1∼5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HUG가 대신 갚아줘야 할 보증사고 액수는 총 2724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3월까지 사고액수가 1391억원이었던 것에 비해 두 달 만에 2배 가까이로 불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역전세난과 깡통전세 현상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 2년 간 전셋값이 급등한 상태에서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깡통전세가 크게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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