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일본 총리가 지난 8일 참의원선거 지원유세 도중 전직 해상자위대원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매우 불행한 일이다. 아베 전 총리는 전후 세대로서 최연소 집권당 대표가 됐고, 8년 9개월이라는 최장기 총리로서 일본을 이끌었다. 한반도에 가까운 야마구치현을 본거지로 하는 친한파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자민당 최대 파벌의 수장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막후 실력자였다.

아베 전 총리는 고이즈미 총리 시기 관방부 장관으로서 일본인 납치자의 귀환을 위한 대북 강경책을 고집해 보수 정치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납치범죄에 대해 김정일의 시인과 사과를 받아냈다. 총리 임기 중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경기진작책으로 무기력해진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고,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 자유 진영의 결속을 도모했다. 특히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 트럼프 전 대통령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다져, 중국의 부상 이후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 일본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다.

한미일 자유진영의 협력을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였으나, 집권 초기 국내정치 기반 강화를 위해 우익의 지지를 얻으려고 과거사를 미화하려 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혐한세력을 자극해 한국 등 이웃 국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결국 군 위안부나 강제징용문제로 한일간 외교적 갈등이 장기간 방치됐고, 또 문재인 정부의 국내 정치용 반일선동으로 인해 한일관계는 격랑에 빠지게 됐다.

아직 강제징용에 관한 대법원 판결 이행이 난제이긴 하지만, 한일 양국 정부가 이를 해결하려는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나토정상회의 참석 기회에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5년 만에 개최했다. 과거사를 잊어서는 안되지만, 세계사의 흐름과 국제정세라는 대국적 시야에서 한일협력관계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일어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쓰나미 사태 당시에도 한국은 물심양면으로 일본 국민을 위로했다. 이번 아베 총리의 불행이 한일관계를 회복 발전시키는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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