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金왕조 우상화 강행하는 말 못할 속사정
北, 金왕조 우상화 강행하는 말 못할 속사정
  • 최영재 기자
  • 승인 2019.0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두혈통 뿌리 김일성 바로알기 [13]

북한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가계를 우상화하고 권력 3대 세습을 강행하는 데는 물러설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한 나라의 공산당 지도자로서 미미했던 창업주 김일성 경력 덮기, △둘째, 가문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의 전통적 심리 이용, △셋째, 1970년대 이후부터 김정일로 승계, 2010년 이후는 김정은으로 세습을 위해, △넷째, 스탈린, 마오 쩌둥 같은 김일성의 사후 격하 막기 위해, △다섯째, 그동안 북한이 저지른 철저한 근대사 날조를 은폐하기 위해서이다.

1945년 김일성의 등장 때 그의 미미한 경력으로는 도저히 그를 북한의 공산당 지도자로 내세울 수 없었다. 그래서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이 김일성의 경력을 날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일성의 경력은 아무리 위조해보아도 당시 쟁쟁했던 국내의 공산당 지도자들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박헌영 등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아래서 지하 운동을 벌였는데 김일성은 그런 경력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북한은 증조부 등 선대들이 국내에서 반제 항일 투쟁을 벌였다고 날조하고 영웅화해서 김일성에 대한 후광 효과로 삼았다.

◇김일성은 스탈린 흉내, 김정은은 김일성 흉내

북한이 김일성 가계를 우상화하는 두 번째 이유는 가문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들의 전통적 사고와 심리적 경향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1970년대부터는 김정일 세습 집권을 노리고 가계의 우상화는 더욱 치밀해졌고 웅장해졌다. 2010년대 들어와서는 김정은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김정은의 외모와 사소한 행동까지도 할아버지 김일성을 모방하게 되었다. 마치 김일성이 스탈린을 모방했던 것처럼.

북한은 당면 시기의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서 과거의 역사를 뜯어고친다. 가령 1960년대 들어와서 처음으로 주체사상을 선전할 때는 매사에서 김일성 일가는 ‘선구자’요 ‘창시자’였다.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도, 부친인 김형직도, 김일성도 다 선구자요 창시자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와 권력 세습을 정당화해야 할 정치적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방향을 수정했다. 김일성은 제 아버지 김형직의 가르침을 잘 지키고 그것을 실천하는데도 창의적이었다는 식으로 역사를 바꾸었다. 이는 김일성의 뒤를 이을 김정일이 김일성의 노선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못박기 위한 것이다. 북한이 김정일로의 권력 세습을 당연시하려고 과거의 역사를 대폭 뜯어고쳐 내놓은 것이 1979년과 1982년 사이에 나온 <조선전사>다.

북한은 정치적 목적에 최우선을 두고 과거의 역사를 시대상의 필요에 따라 뜯어고쳐왔다. 북한 정권의 존립 근거가 바로 이 날조된 김일성의 역사다. 이 거짓의 역사가 북한 내부의 주민들에게 알려지면 김일성 체제의 역사적 ‧ 심리적 ‧ 도덕적 근거가 모두 무너지게 된다. 권력을 세습하지 않으면 날조된 김일성의 역사가 탄로나기 때문에 북한 정권은 더욱 필사적이고 결사적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왕조라든가 봉건 군주 전제 제도라든가 하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봉건 · 반제 투쟁은 공산당 혁명 사업의 첫걸음이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공산주의 혁명으로 절대로 가지 못한다는 것이 공산당의 철칙이다. 공산당의 반봉건 투쟁이란 가족주의 · 혈연주의를 반대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세습 집권은 반봉건 투쟁주의자에게는 최악의 범죄다.

◇공산당에게 권력세습은 최악의 범죄

그러나 김일성의 조선 노동당은 1970년대 들면서 세습 집권 태세를 공표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조선 노동당이, 공산당의 기본 강령도 지키지 못하는 봉건적이고 반계급적인 정당으로 타락했음을 전 세계에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1970년대는 아직 전 세계에 공산 국가가 많이 존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전 세계로부터 비난이 평양으로 쏠렸다. 그러나 김일성에게는 이런 비난을 무릅써야 할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권력 세습의 네 번째 이유인 사후 격하를 막기 위함이었다. 절세의 영웅으로 추앙받아온 김일성은 죽은 후에 최고의 반역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김일성은 자신을 북한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 스탈린이 사후에 어떤 상황을 겪었는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1953년에 스탈린이 죽자 3년 후에 열린 소련 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스탈린의 충직한 부하였던 흐루시초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당 중앙위원회는 마르크스 · 레닌주의 정신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개인숭배와 특정의 활동가를 기적을 낳은 영웅으로 숭앙하고 당과 인민 대중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그 창조적 적극성을 약화하는 개인숭배에 단호히 반대했다. …”

이것이 스탈린의 개인숭배에 대한 최초의 공격 화살이었다. 이후 5년이 지난 1961년 소련공산당 제22차 대회에서 스탈린은 단죄를 받았다. 기적을 낳은 영웅으로 행세했던 과오와 인민 대중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건설 성과를 개인의 창조적 업적으로 가로채고 개인숭배를 강요하고 무고한 사람을 스파이로 인민의 적으로 몰아 숙청했던 죄과를 받은 것이다. 그 결과 스탈린에 의해 숙청된 사람들은 명예 회복되고 스탈린의 관은 레닌 묘로부터 철거당했다.

김일성의 우상화는 스탈린보다 훨씬 더 심하다. 그는 모래알로 쌀을 만들고, 솔잎으로 배를 만드는 신통력을 가진 초인격적 존재로까지 신격화되어 있다. 심지어 김일성은 1945년 해방이 자신의 항일 투쟁 덕택이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또 김일성은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숱한 정치적 살인을 저질렀다. 스파이다, 인민의 적이다 하며 처형하는 것은 스탈린의 수법 그대로다. 일제 하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끝까지 투항하지 않고 지하 활동을 했던 숱한 국내 공산주의자들이 김일성에 의해 살해됐다.

◇김일성, 숱한 항일투사를 누명 씌워 제거

미제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당한 박헌영이 대표적 예다. 또 중국 연안의 동굴 속에서 중국 공산당과 더불어 숱한 항일 투쟁을 벌였던 한인 공산주의자들이 김일성에 의해 살해됐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북한의 세대만이 전혀 모르도록 교육되어 있다. 현재 한국에 온 3만여 명의 탈북자도 이런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생전의 김일성은 스탈린과 같은 운명을 당하지 않으려고 대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탈린도 마오 쩌둥도 정적에 의해 매도되고 격하된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충직했던 동지요 부하들이 그렇게 했다. 김일성은 그래서 혈육인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해서 사후의 단죄와 부관참시를 면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김정은에게 권력을 세습한 김정일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 이유만 들더라도 김정은 정권이 가계를 우상화하고 세습 집권을 계속해야 할 필요는 명백하다. 하지만 백두 혈통의 창시자 김일성에게는 기어코 세습 집권으로 가야할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의 날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그 어떤 폭군도 지도자도 자기 경력을 거의 100% 날조하고 남의 투쟁 경력을 자신의 투쟁 경력으로 하고 자기의 집안 역사를 완전히 날조한 예는 없었다.

이 사실이 세상에 특히 북한 내부에서 폭로되면 김일성은 민족 반역자로서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의 배신자, 전 세계 공산당의 적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아무리 공산주의자라도 나름대로 최소한의 도덕과 성실과 의리가 있어야 한다. 동지를 아끼고 사랑하며 혁명 전선에서 희생된 전우를 기념하고 혁명과 건설에 이바지한 공로의 서열을 존중하는 등이 최소한의 그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에게는 이런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는 과거의 역사를 날조하면서 이 모든 공산주의자들의 전통을 짓밟아 버렸다. 또 이 날조된 역사를 지키기 위해 자기의 절대적 권력 유지와 세습 정권 구축에만 전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게도 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에 이 날조된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사’가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역사 교과서는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사’가 완전히 날조라는 사실을 제대로 서술하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사실인양 애매모호하게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 국민들은 북한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사가 날조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더욱이 북한 동포들은 그것이 진실의 역사인 줄 알고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으로 귀순한 탈북 동포들까지 이런 역사 인식을 갖고 있다. 탈북 동포 대다수는 비록 김정일, 김정은이 잘못해서 북한이 살기 힘든 사회가 되었지만 김일성 시대에는 아주 훌륭한 사회였고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에 민족사의 정통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국내 역사학계, 북한 역사날조 무분별 수용

▲ 1964년 부터 수차례 조작편집을 거쳐 북한 대외선전용 잡지인 [등대] 1967년 10월호에 게재 된 사진에는 김일성의 빨치산 선배인 최룡해부친 최현을 중심으로 좌우에 안길과 김일성을 배치 했다가 1972년 4월 24일 개관 된 '조선혁명박물관'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옮겨 놓고 좌우에 최현과 안길을 배치 한 사진으로 대체 전시 하였다. 이로써 1967년 7월 이전 북한 내 제1의 존엄은 마적단 공비 말단간부 출신 김일성이 아니라 동북항일연군 중견간부출신 소련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정찰대 좌장격인 최현이었음이 명백해 졌다. ⓒ뉴스타운
▲ 1964년 부터 수차례 조작편집을 거쳐 북한 대외선전용 잡지인 [등대] 1967년 10월호에 게재 된 사진에는 김일성의 빨치산 선배인 최룡해부친 최현을 중심으로 좌우에 안길과 김일성을 배치 했다가 1972년 4월 24일 개관 된 '조선혁명박물관'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옮겨 놓고 좌우에 최현과 안길을 배치 한 사진으로 대체 전시 하였다. 이로써 1967년 7월 이전 북한 내 제1의 존엄은 마적단 공비 말단간부 출신 김일성이 아니라 동북항일연군 중견간부출신 소련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정찰대 좌장격인 최현이었음이 명백해 졌다. ⓒ뉴스타운

남북한의 국민들이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북한 내부에는 당이 가르치는 것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거듭되는 교육 · 선전 · 학습 · 교양 · 운동을 통해 당의 가르침은 절대로 옳다는 신앙이 생기게끔 하는 것이 북한의 방법이다. 동시에 북한은 전 세계를 향해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사를 선전하고 자랑하며 광고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숱한 돈을 쓰며 전력을 쏟아붓는다.

이런 상황이니 대한민국은 역사를 세계로 향해 제대로 홍보하지 못하는 처지에서 외국인이나 재외동포들은 북한의 일방적 선전만 믿게 된다. 북한이 우리의 근대사를 마음대로 날조하고 또 외국에 선전할 수 있었던 데는 북한 탓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잘못도 없지 않다. 북한의 근대사 날조는 해방 직후부터 시작되어 거듭거듭 커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때마다 역사적 사실을 들어 북한의 날조를 낱낱이 분쇄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가장 심각한 영역이 항일 독립운동사다. 우리 역사학계가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다보니 이 틈새를 김일성 집단이 파고들어 있지도 않았던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사’를 거대하게 창작해놓고 기정 사실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 구도를 밀어붙인 것이 북한은 항일 빨치산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이고 남한은 미제를 등에 업은 친일파들이 세운 나라라는 주장이다.

----------------------------------------------------------------------------------------------------------------------------------------------------------------------

[영어판]

Reasons to enforce idolizing North Korea's Kim dynasty (Baekdu lineage)

YoungJae Choe Journalist

There are five reasons why North Korea could not back down its efforts to idolize households leading to Kim Il-sung, Kim Jong-il, and Kim Jong-un and to enforce the three generations of power. The first was to hide the weak career of Kim Il-sung, the founder of the country as a leader of the Communist Party of Korea; second, the traditional psychological use of Korean people who value the family;

third, for the hereditary succession of power to Kim Jong-il from the 1970s; fourth, to prevent Kim Il-sung’s degradation after his death like Stalin and Mao Zedong, and fifth, to conceal the complete fabrication of modern history of the North Korea.

At the time of Kim Il-sung's appearance in 1945, his slight career could hardly bring him into leadership of the Communist Party of North Korea. So, the Soviet army that conquered North Korea began to fake Kim Il-sung's career. However, Kim Il-sung's career did not reach the domestic communist leaders who fought at the time, no matter how much they faked it.

Domestic communists such as Park Hun-young, especially, underground movement under the severe repression of Japanese imperialism, Kim Il-sung had no such experience at all. Thus, North Korea faked and heroized that the fleet, including the great-grandfathers, fought anti-Semitic struggle in Korea, and made it a halo effect for Kim Il-sung.

The second reason North Korea idolizes Kim Il-sung's household was to take advantage of traditional thinking and psychological tendencies of Korean people who care much about family. Especially since the 1970s, the idolization of households has become more compact and larger, with Kim Jong-il ruling for power. In 2010, Kim Jong-un imitated his grandfather Kim Il-sung’s appearance and minor actions in order to justify his succession, just as Kim Il-sung imitated Stalin.

North Korea revises its history from the past according to the political necessity of the present period. For example, in the 1960’s, when the Juche idea was promoted for the first time, it was the 'pioneer' and the 'founder' of the Kim Il-sung family. Kim Eung-woo, the great-grandfather of Kim Il-sung, Kim Hyung-Jik, his father, and Kim Il-sung himself were all pioneers and founders.

However, in the 1970’s, there was a political need to justify the power succession. From this time, he modified the direction. Kim Il-sung changed his history in a way that he kept the teachings of his father Hyung-jik well and was creative in practicing them.

This was to prevent Kim Jong-il from keeping Kim Il-sung's line well after Kim Il-sung. It was Joseon Warriors that came out between 1979 and 1982, when North Korea drastically revised its past history to make the power succession of Kim Jong-il seem obvious.

North Korea overthrew the history according to the needs of each time period, according to political purposes. The foundation of the North Korean regime is this fabricated history of Kim Il-sung. If the history of this falsehood is known to the people of North Korea, the historical, psychological, and moral basis of the Kim Il-sung system will be destroyed. The North Korean regime is more desperate and inevitable, as the heroic history of Kim Il-sung gets exposed unless it seizes power.

North Korea is not afraid of accusations of socialist dynasties or feudal lordship premises. The anti-feudalist and anti-imperialist struggles are the first step in the revolution of the Communist Party. The Communist Party has a rule that it can never go to the communist revolution without going through this stage.

The Communist Party's struggle for anti-slavery is to fight against familyism and bloodlineism. The hereditary power is the worst crime for a semi-feudalist struggler. However, in the 1970s, Kim Il-sung's Joseon Labor Party began publicizing the hereditary power posture. North Korea's Joseon Labor Party has acknowledged to the world that it has fallen into a feudal, anti-class party that cannot keep the basic principles of the Communist Party.

Since the 1970’s, when there were still many communist nations around the world, criticism from all over the world was directed at Pyongyang. However, Kim Il-sung was unable to say anything about this criticism. It was the fourth reason for the succession of powers, to prevent post-graduation. Kim Il-sung, who has been regarded as a savage hero, was afraid to be stigmatized as the best traitor after his death.

Kim Il-sung watched closely what happened to Stalin, who made him the main character of North Korea. Khrushchev, who was a loyal follower of Stalin at the 20th Congress of the Soviet Communist Party, three years after the death of Stalin in 1953, said:

"The Central Committee of our Party has been firmly committed to the worship of individuals who have nothing to do with the spirit of Marxism-Leninism and to the worship of individuals who revere certain activists as miraculous heroes, underestimate the role of the party and the masses of the people and weaken their creative aggressiveness I opposed. ... "

This was the first attack on Stalin's personal worship. Five years later, Stalin was condemned at the 22nd Congress of the Soviet Communist Party in 1961. He has been forced to commit personal worship that interfered with the creative accomplishments of the construction achievements made by the miraculous hero and the sacrifices of the popular masses, and the crime of purging innocent people into enemies of the people as spies. As a result, those who were purged by Stalin were restored to honor and Stalin's coffin was demolished from Lenin's tomb.

The idolization of Kim Il-sung is far worse than Stalin. He is believed to be a superhuman being with the power to make rice with sand and pear with pine needles. Even Kim Il-sung is promoting the liberation in 1945 because of his anti-Japanese struggle.

Kim Il-sung, like Stalin, committed numerous political murders. Like Stalin’s practices, he murdered people saying they are spies or enemies of our people. Many domestic communists who did not surrender to the underground activities, even with the harsh repression under the Japanese rule, were killed by Kim Il-sung.

For example, Park Hun-young was shot under the pretext of a US spy. In addition, Korean communists were killed by Kim Il-sung in the caves of the Chinese coast, who had fought in many anti-Japanese struggles with the Chinese Communist Party. However, only the North Korean generations are educated to know nothing at all. More than 30,000 North Koreans who have come to Korea now do not know about this fact, either.

Kim Il-sung, throughout his lifetime, could not help but think about countermeasures not to be confronted with the fate of Stalin. Stalin and Mao were neither sold nor downgraded by the political opponent. Dongji-yo’s subordinates did so, while all of them were so loyal.

Kim Il-sung tried to avoid being convicted or a crime and digged up with corpse and then beheaded, by inheriting power to his blood-born son. This is also true of Kim Jong-il, who inherited power to Kim Jong-un.

It is obvious that Kim Jong-un’s regime must idolize households and continue to hold the hereditary power, even if for the four reasons mentioned above. However, Kim Il-sung, the founder of Baekdu lineage, had a clear reason to have hereditary power.

It is because of the fakes of history. In the history of mankind, no tyrannical leader has made nearly 100% of his career, making his struggle career as his own struggle career, and making up his own family history completely.

If this fact is revealed in the world, especially in North Korea, Kim Il-sung will be stigmatized not only as a national traitor but also as a communist traitor, a global communist party enemy. No matter how communists, there should be at least morality, sincerity and righteousness. The least is the respect for the comrades who commemorate the comrades victimized by the revolutionary front and who contributed to the revolution and construction.

However, Kim Il-sung could not expect such things. He faked the history of the past, and trampled all of these communist traditions. In order to preserve this fictitious history, he devoted himself only to maintaining his absolute power and establishing a regime of sovereignty.

However, without being ridiculous, this fabricated "Kim Il-sung’s anti-Japanese armed struggle" has been placed in the history textbook of the Republic of Korea. Our history textbook does not properly state that 'Kim Il-sung anti-Japanese armed struggle' is completely fabricated.

In many cases, it is ambiguous as if it were true. Therefore, our people do not know that Kim Il-sung's anti-Japanese armed struggle of North Korea has been fabricated. Moreover, North Koreans know that it is a history of truth. Even the defecting Koreans who have devoted themselves to the Republic of Korea have this historical awareness.

▲ 1964년 부터 수차례 조작편집을 거쳐 북한 대외선전용 잡지인 [등대] 1967년 10월호에 게재 된 사진에는 김일성의 빨치산 선배인 최룡해부친 최현을 중심으로 좌우에 안길과 김일성을 배치 했다가 1972년 4월 24일 개관 된 '조선혁명박물관'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옮겨 놓고 좌우에 최현과 안길을 배치 한 사진으로 대체 전시 하였다. 이로써 1967년 7월 이전 북한 내 제1의 존엄은 마적단 공비 말단간부 출신 김일성이 아니라 동북항일연군 중견간부출신 소련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정찰대 좌장격인 최현이었음이 명백해 졌다. ⓒ뉴스타운
▲ 1964년 부터 수차례 조작편집을 거쳐 북한 대외선전용 잡지인 [등대] 1967년 10월호에 게재 된 사진에는 김일성의 빨치산 선배인 최룡해부친 최현을 중심으로 좌우에 안길과 김일성을 배치 했다가 1972년 4월 24일 개관 된 '조선혁명박물관'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옮겨 놓고 좌우에 최현과 안길을 배치 한 사진으로 대체 전시 하였다. 이로써 1967년 7월 이전 북한 내 제1의 존엄은 마적단 공비 말단간부 출신 김일성이 아니라 동북항일연군 중견간부출신 소련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정찰대 좌장격인 최현이었음이 명백해 졌다. ⓒ뉴스타운

The majority of North Korean defectors believe that Kim Jong-il and Kim Jong-un had become a society in which North Korea could hardly survive, but it was a great society in the Kim Il-sung era and believed that North Korea had a legitimacy of national history.

There is a reason why the people of North and South Korea are doing this. Inside North Korea, there is a system in which the party cannot but accept the teachings unconditionally. It is North Korea's way of making faith in the party's teachings absolutely right through repeated education, propaganda, learning, culture and movement.

At the same time, North Korea advertises and boasts of promoting Kim Il-sung's anti-Japanese armed struggles to the whole world. To this end, North Korea pours and spends a lot of money.

In this situation, South Korea cannot promote its history to the world properly, and foreigners or overseas Koreans only believe in the unilateral propaganda of North Korea. It is because of North Korea that North Korea has been able to fabricate our modern history at will and promote it in foreign countries. North Korea's modern history of hoaxing has been growing since the liberation, and we had to crush the hoax of North Korea every time. But I could not.

The most serious area is the anti-independence movement. Our historical academy is not studying the independence movement properly, and it is pushing to the fact that it created a great deal of 'Kim Il-sung’s anti-Japanese armed struggle' that the Kim Il-sung group did not dig into this gap. It is argued that North Korea is a country founded by descendants of anti-Japanese sects and that South Korea is a nation founded by pro-Japanese and pro-American groups.

--------------------------------------------------------------------------------------------------------------------------------------------------------

[일어판]

白頭血統の偶像化を強行する理由

崔寧宰 記者

北朝鮮が金日成(キム・イルソン)、金正日(キム・ジョンイル)、金正恩(キム・ジョンウン)と続く家系を偶像化し、権力の3代世襲を強行するのには後に引けない五つの理由がある。第一に、一国の共産党指導者として微々たる存在であった創業主・金日成の経歴をを隠すため。第二に、家門を重視する朝鮮人の伝統的心理を利用するため。

第三に、1970年代以降は金正日に、2010年以降は金正恩に世襲するため。第四にスターリン、毛沢東のように、金日成がその死後に格下げされないため。第五に、これまで北朝鮮が犯してきた徹底的な近代史の捏造を隠蔽するためであった。

1945年に金日成が登場した時、彼の貧弱な経歴ではとうてい彼を北朝鮮の共産党指導者として表に出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そこで北朝鮮を占領したソ連軍は、金日成の経歴を捏造し始める。しかし金日成の経歴をどんなに偽造したとしても、当時のそうそうたる国内共産党指導者たちには及ばなかった。

特に朴憲永等の国内派共産主義者たちは日帝の過酷な弾圧下にあっても地下運動を展開していたのに対し、金日成にはそうした経歴は皆無であった。そこで北朝鮮は、曽祖父を始めとする先代たちが国内で反帝抗日闘争を展開したことにし、先祖を英雄化することで七光り効果を狙った。

北朝鮮が金日成の家系を偶像化する二番目の理由は、家門を重視する朝鮮人の伝統的思考と心理的傾向を利用するためであった。特に1970年代からは金正日の世襲執権を狙って、家系の偶像化はより緻密に、雄壮になる。2010年代に入ると、金正恩の世襲を正当化するために、金正恩の外見やささいな行動にいたるまで、祖父・金日成を模倣するようになった。まるで金日成がスターリンを模倣したようにだ。

北朝鮮は、その時々の政治的ニーズにより、過去の歴史を修正してしまう。たとえば1960年代に入って初めて主体思想のプロパガンダをした時には、金日成一家は常に「先駆者」であり「創始者」であった。金日成の曽祖父・金膺禹(キム・ウンウ)も、父・金亨稷(キム・ヒョンジク)も、金日成も皆、先駆者であり、創始者であった。

しかし1970年代に入り、権力世襲を正当化する政治的必要性が生じた。そのため、この時から方向転換し始める。金日成はその父・金亨稷の教えをよく守り実践しながらも創意的であったという具合に歴史を修正した。これは、金日成の後を継ぐ金正日が、金日成路線を踏襲すべきだと念を押すためである。北朝鮮が、金正日への権力世襲を当然の事実と思わせるために過去の歴史を大幅に修正しておいたのが、1979年と1982年の間に出版された『朝鮮戦史』だ。

 

北朝鮮は政治的目的を最優先しつつ、過去の歴史を時代のニーズに沿って修正してきた。北朝鮮政権の存立根拠は、まさにこの捏造された金日成の歴史だ。北朝鮮内部の住民たちがこの虚偽の歴史を知れば、金日成体制の歴史的、心理的、道徳的根拠が崩壊することになる。権力を世襲しなければ、金日成の歴史捏造が露呈してしまうため、北朝鮮政権はいっそう必死で、決死的だ。

北朝鮮は、「社会主義王朝だ」、「封建君主全体制度だ」といった非難を受けることを恐れない。反封建、反帝闘争は、共産党革命事業の第一歩だ。この段階を経ずしては共産主義革命が正しく発展しない、というのが共産党の鉄則である。共産党の反封建闘争というのは、家族主義、血縁主義に反対する闘争のことをいう。

世襲執権は、反封建闘争主義者には最悪の犯罪だ。ところが金日成の朝鮮労働党は、1970年代に入って世襲執権体制を公表し始めた。北朝鮮の朝鮮労働党が、共産党の基本綱領も守れない封建的で半階級的な政党に堕落したことを、全世界の前に自認したことになる。

1970年代は、世界的に共産国家がまだ数多く存在していたため、全世界から平壌に非難の矢が向けられた。しかし金日成には、これらの非難をも覚悟せざるを得ない、口に出せぬ事情があった。それがまさに権力世襲の四つ目の理由である、「死後の格下げ」を防ぐためであった。世紀の英雄として崇拝されてきた金日成は、死後に「最高の反逆者」という烙印を捺されることを恐れたのである。

 

金日成は、彼を北朝鮮の主人公に仕立ててくれたスターリンが、その死後にどのような目に遭ったかをしっかりと目にした。1953年にスターリンが死亡し、その3年後に開催されたソ連共産党第20次大会で、スターリンの忠実な部下であったフルシチョフは次のように語った。

「我が党の中央委員会は、マルクス・レーニン主義の精神とはまったく無関係の個人崇拝と、特定の活動家を“奇跡を起こした英雄”として崇めながら党と人民大衆の役割を過小評価し、その創造的積極性を後退させる個人崇拝に断固として反対した…」。

これがスターリンの個人崇拝に対する最初の攻撃の矢であった。それから5年が経過した1961年、ソ連共産党第22次大会でスターリンが断罪される。奇跡を起こした英雄に成りすました罪と、人民大衆の犠牲により成された建設成果を横取りして個人の創造的業績とし、個人崇拝を強要した罪、そして無辜の人々をスパイ容疑で人民の敵として追いやり粛清した罪によるものだ。その結果、スターリンに粛清された人々は名誉回復し、スターリンの柩はレーニン廟から撤去されてしまった。

金日成の偶像化は、スターリンよりもずっと深刻だ。彼は砂つぶから米をつくり、松の葉から船をつくる神通力を持った超人格的存在にまで神格化されていた。甚だしくは、金日成は1945年の解放が、自らの抗日闘争のおかげだとプロパガンダしている。また金日成は、スターリンと同様、大量の政治的殺人を犯した。スパイだ、人民の敵だという理由で処刑するやり方は、スターリンの手法とまったく同じである。

日帝統治下の過酷な弾圧の中でも、最後まで投降せず地下活動を行った数多くの共産主義者たちが、金日成により殺害された。米帝のスパイという濡れ衣を着せられて銃殺された朴憲永が、その代表的な例だ。また、中国延安の洞窟で、中国共産党とともに数多くの抗日闘争を展開した朝鮮人共産主義者たちが、金日成によって殺害された。しかしこうした事実は、北朝鮮の住民たちはまったく知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教育されている。現在、韓国にいる3万名を超える脱北者たちですらも、これらの事実についてよく把握していない。

 

生前の金日成は、自らがスターリンと同じ運命を辿ることがないように対策を講じずにはいられなかった。スターリンも毛沢東も、政敵によって攻撃され、格下げされたのではない。いずれも忠実だった同士や部下からそのような目にあっている。そのため、金日成は、血肉である息子に権力を世襲し、死後の断罪や「剖棺斬屍」を免れようとしたのだ。金正恩に権力を世襲した金正日も同様である。

上記の四つの理由だけをみても、金正恩政権が家系を偶像化し、世襲執権を継続する必要があることは明白だ。しかし白頭(ペクトゥ)血統の創始者である金日成には、絶対に世襲執権を行わなければならない明確な理由があった。それが他でもない、歴史捏造のためだ。人類歴史上、どんな暴君や指導者でも、自らの経歴をほぼ完璧に捏造し、他人の闘争経歴を横取りして自らの闘争経歴とし、自分の家族史を完全に捏造したというケースはない。

この事実が世間、特に北朝鮮内部に暴露されることになれば、金日成は民族の反逆者となるだけでなく、共産主義に対する背信者、全世界共産党の敵という烙印を捺されることだろう。どんな共産主義者であろうと、最低限の道徳と誠実と義理は存在すべきだ。少なくとも、同士を惜しむ、愛する、革命の前線で犠牲になった戦友を記念する、革命と建設に寄与した功労の序列を尊重するといった姿勢を持つべきであろう。

しかし、金日成にそれを期待することはできない。彼は過去の歴史を捏造することで、全共産主義者の伝統を踏みにじった。さらにこの捏造の歴史を守るために、自らの絶対的権力維持と世襲政権の構築のみに全力を注いだのである。

呆れたことに韓国の歴史教科書には、この捏造の「金日成抗日闘争史」が堂々と掲載されている。韓国の歴史教科書は、「金日成抗日武装闘争史」が完全なる捏造だという事実をしっかりと伝えていない。まるでそれが事実であるかのごとく曖昧な記述がなされていることが多い。

▲ 1964년 부터 수차례 조작편집을 거쳐 북한 대외선전용 잡지인 [등대] 1967년 10월호에 게재 된 사진에는 김일성의 빨치산 선배인 최룡해부친 최현을 중심으로 좌우에 안길과 김일성을 배치 했다가 1972년 4월 24일 개관 된 '조선혁명박물관'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옮겨 놓고 좌우에 최현과 안길을 배치 한 사진으로 대체 전시 하였다. 이로써 1967년 7월 이전 북한 내 제1의 존엄은 마적단 공비 말단간부 출신 김일성이 아니라 동북항일연군 중견간부출신 소련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정찰대 좌장격인 최현이었음이 명백해 졌다. ⓒ뉴스타운
▲ 1964년 부터 수차례 조작편집을 거쳐 북한 대외선전용 잡지인 [등대] 1967년 10월호에 게재 된 사진에는 김일성의 빨치산 선배인 최룡해부친 최현을 중심으로 좌우에 안길과 김일성을 배치 했다가 1972년 4월 24일 개관 된 '조선혁명박물관'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옮겨 놓고 좌우에 최현과 안길을 배치 한 사진으로 대체 전시 하였다. 이로써 1967년 7월 이전 북한 내 제1의 존엄은 마적단 공비 말단간부 출신 김일성이 아니라 동북항일연군 중견간부출신 소련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정찰대 좌장격인 최현이었음이 명백해 졌다. ⓒ뉴스타운

従って韓国人は、金日成の抗日武装闘争史が捏造だという事実をよく知らないことが多い。また北朝鮮の住民たちは、それが真実の歴史であると思っている。甚だしくは、韓国に帰順した脱北同胞まで、そうした歴史認識を持っている。脱北同胞の大多数は、たしかに金正日、金正恩の失政により北朝鮮社会が生活に困窮するようになったが、金日成時代には非常によい社会であったし、韓国ではなく北朝鮮にこそ民族史の伝統性があると信じている。

南北韓の国民がこうなったのには理由がある。北朝鮮内部では当時、教えられたことは無条件、受容しなければならない体制が整っていた。度重なる教育、プロパガンダ、学習、教養、運動を通して、党の教えは絶対に正しいという信仰を持たせるのが北朝鮮のやり方だ。同時に北朝鮮は、全世界に向かって金日成の抗日武装闘争史をプロパガンダしながら自慢し、広告している。北朝鮮はそのために多額の金を投資し、全力を注いでいるのである。

こうした状況ゆえに、大韓民国はその歴史を世界に向かってきちんと発信できない立場に置かれ、外国人や在外同胞たちは北朝鮮の一方的なプロパガンダだけを信じることになる。北朝鮮が南北韓の近代史を勝手に捏造し、諸外国に対してプロパガンダできたのは、たしかに北朝鮮の責任もあるが韓国の過ちもないわけではない。北朝鮮の近代史捏造を一つ一つ粉砕してくるべきであった。

最も深刻な領域が抗日独立運動だ。韓国の歴史学界が独立運動史についてきちんと研究しなかったため、その隙をついて金日成集団がありもしない「金日成抗日武装闘争」を壮大に創作し、既成事実としてしまった。この構図を押し通したのが、北朝鮮は抗日パルチザンの後裔が建設した国であり、南韓は米帝を背負った親日派が建設した国だという主張だ。

 

sopulgo@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