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해일
장해일

전세계가 40년 만에 찾아온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최근 10년간 진행된 자산 인플레이션도 문제지만, 작년부터는 원자재를 비롯해 생활물가마저 상승이 가파르다. 이 때문에 빈부격차가 확대되며 사회적 갈등이 커져가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정부의 돈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보통 위기국면에서는, 정부가 돈을 푸는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살리고 특정 취약계층에 대한 각종 지원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물가를 잡아야 하기에, 당분간은 이런 식의 경기 부양을 할 수 없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또 신냉전 상황으로 치닫는 국제 관계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 미·중 진영간의 갈등은, 세계화로 인한 비용 절감과 무역의 이익을 희생하고서라도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는, 일종의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향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세계경제 전체가 의도치 않게 고비용 구조를 초래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설상가상 러·우크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글로벌 공급 위축이 일어나고 있다. 제조강국이자 국제무역을 통해 경제를 지탱해온 우리로서는 가장 회피하고 싶은 국면을 한꺼번에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이념에 경도된 ‘선심성 정책’의 포퓰리즘에 몰두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새 정부는 이로 인해 잔뜩 늘려 놓은 돈이 발생시킨 인플레이션으로 민심을 잃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면 이처럼 사방이 온통 꽉 막힌 듯 난해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민생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위기를 돌파할 쾌도난마식 정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필자는 경제주체인 가계·기업·정부 각자가 고통분담을 기꺼이 감내하는 것이 우선은 최고의 해법임을 강조한다.

먼저 가계는 불경기에 대비한 근검절약을 생활화하며,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가계구조 조정으로 고통분담을 감수해야 한다. 국가 GDP보다 큰 가계부채가 고금리시대에 경제위기의 또 다른 뇌관이 되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이 요구된다.

기업도 경영환경의 극복을 위해 임금인상 동결, 생산성 제고 등 노사협력의 자발적 고통분담 노력이 절실하다. 자기이익에 매몰되어 분규를 일삼는 귀족노조에 원칙없는 타협은 금물이다. 기업이 운영만 잘하면 시장이 보상하도록 자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곧 코로나 재정 금융지원으로 연명해온 좀비기업의 생사문제가 부상될 것이다. 추가지원보다는 과감한 퇴출을 머뭇거리서는 안된다. 그래야 경제에 새 살이 돋는다.

공기업이 더 큰 문제다. 다행히도 현 정부는 개혁의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동안 방만 경영으로 급격히 비대해진 공기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피해갈 수 없다. 특히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으로, 사실상 국가부채인 공기업부채가 경제에 중첩적인 화근이 되지 않도록 묘수룰 짜내야 한다.

정부가 당면한 위기극복을 위해 해야 할 첫 걸음은 국민에게 고통분담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나아가 스스로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재정긴축과 공공부문의 군살빼기로 고통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 정치권도 각 정파의 이해를 떠나 한목소리로 메시지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JP모건의 전망대로 380달러 유가시대가 도래한다면, 우리는 퍼펙트스톰 상황을 피해갈 수는 있을까? 극단적 예측일지언정, 이 엄혹한 현실에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무역역조의 주범인 전기·가스 등 공공재 소비부터 줄여나가야 한다. 마치 외환위기 당시의 금모으기 심정으로.

이러한 고통분담 기조 하에, 조세부담 경감과 과감한 탈규제를 통해 경제주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성장동력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이같이 경제를 향한 올바른 신호를 보내는 것이 분명해지면, 당사자들은 자구책을 강구해 나갈 것이고 위기극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나아가 국민에게 고통분담 이후 다가올 밝은 미래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고, 위기를 기회로 승화해 나가는 지혜를 함께 모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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