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회의》에 대한 제자의 질문과 나의 답
《학급회의》에 대한 제자의 질문과 나의 답
  • 최성재 교육평론가
  • 승인 2019.0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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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사진=연합뉴스

∥《잠이 싹 달아난 어떤 학급회의》를 읽고, 옛 제자 한 명이 내게 송곳 질문을 던졌다. 다음은 제자의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답(장)이다.∥

[제자의 질문]

선생님, 1+1=2 가 당연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데카르트가 생각났어요. 나는 생각(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내가 존재하는 건 당연한 걸까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전히)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하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범주인가요..?

[나의 답(장)]

사랑하는 제자야, 하라리(Harari)는 『호모 데우스(Homo Deus』(*)에서 데카르트가 당연시하는 ‘생각하는’ 존재도 부정한다. 인간의 생각은 수십억 년의 진화에 숨겨진 organic algorithms(유기체적 알고리듬)에 지나지 않고, 그것은 다시 수학적 알고리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내가 읽은 것은 영문판)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二元論)을 당연시하는 데카르트와 달리, 다윈의 진화론을 지성인의 가장 현명한 종교로 신봉하는 대부분의 현대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하라리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 고유의 사고 능력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도 다른 동물, 심지어 식물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유기체적 알고리듬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그는 단호하게 주장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배울수록 그 비율이 높아지는 무신론(無神論)의 입장에서 도긴개긴 여느 현대인처럼 그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God is dead!), 나아가 유물론적(唯物論的) 일원론(一元論)의 입장에서 이제까지 진화론자도 그나마 인간에게 고유하다고 당연시되던 인간의 영혼도 부정한다.

더 나아가 하라리는 이미 눈앞에 성큼 다가온 초연결 지구촌 시대에 인간의 전문 지식뿐 아니라 판단 능력, 심지어 인간의 감정도 인간보다 더 잘 알게 될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빅브라더(Big Brother)가 신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인간은 인공지능이 모든 면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특이점(Singularity)이 도래할 미래의 어느 순간부터(빠르면 2050년, 늦어도 2100년) 일개 부품으로 전락하여, 생각하고 느끼는 주체적인 존재로서 갖는 정체성(identity)도 잃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장차 인간 사회는 알고리듬을 개발하고 관리하고, 사이보그와 결합된 불멸의(immortal) 극소수 슈퍼맨 곧 신적(神的) 인간(Homo Deus)과 절대다수 쓸모없는(useless) 인간 두 부류로 나눠지는 사회, '불평등이 당연한' 세계가 될 게 명약관화하다고, 그는 확신한다.

과연 그럴까.

먼저 인간의 생각 심지어 느낌도 알고리듬에 지나지 않는다는 기계론적 무신론적 맹신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 결론일까. 진화론이 틀림없는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뒤에서 빙긋이 웃으며 그걸 조종한 신의 존재가 없었다는 명명백백한 증좌가 될 수 있을까.

또한 그런 알고리듬을 알아내는 인간의 능력은 어디서 올까. 왜 침팬지나 보노보는 그런 능력이 없이 진화적 존재로서 태어나서 살고 후손을 남기고 사라질까. 지금부터 100만 년이 지나면 그들이 알고리듬을 발견하여 『햄릿』을 창작하고 『운명』을 작곡하고 인터넷을 발명할까.

지금부터 20억 년이 지나면, 백두산 천지 속의 바위가 곰 비슷한 유기체로 변하여 유성생식하여 후손을 하늘의 별만큼 번성시킬 수 있을까.

[태국의 기이한 남자와 세계적 과학자들]

태국 드라마의 한 장면 캡쳐. 사진=구글 이미지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태국 드라마의 한 장면 캡쳐. 사진=구글 이미지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언젠가 우연히 TV에서 기이한 태국 남자를 본 적이 있다. 한 10년도 넘은 듯하다. 어느 날 스무 살가량의 남자가 먼 길을 걸어서인지 차를 타고서인지는 생각나지 않는다만, 꽤 먼 곳에서 남자보다 나이가 몇 살 많은 딸 두 명과 사는 마흔 살가량의 한 과부를 찾아간다.

총각은 대뜸 ‘당신은 20여 년 전 내 전생의 마누라니까, 이제부터 과부살이를 청산하고 나랑 같이 살아야 하오!’라고 주장한다. 너무나 황당해 하는 평범한 외모의 여자에게, 살짝 못생긴 어머니뻘 여자에게 남자는 부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도 기연미연(其然未然)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전생에 친하게 지냈던 그 마을 친구 몇 명의 이름을 대며 증인으로 세운다. 여기까지도 사전에 조사하면, 웬만하면 알 수 있다.

놀랍게도 그가 증인으로 내세운 이들과 ‘전생에’ 겪은 일들, 나눈 대화들 중에는 그들끼리만 공유하는 기억이 숱했다. 그래서 그들이 마침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청년을 자기들의 친구로 인정하고 같이 어울려 지낸다. 이에 중년의 과부는 자기 딸보다 어린 청년과 부부의 인연을 맺고 딸들은 취재진이 보는 앞에서 약간 어색한 웃음을 웃으며 새 아빠를 긴가민가하면서, ‘아빠’라 부른다.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 호킹, 도킨스, 이들은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무신론자로 유명하다. 그들은 기를 쓰고 기이하게 엄청난 사명감을 갖고 바락바락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자신들의 양심을 걸고 유서를 남겼거나 엄청 두꺼운 책도 펴냈다. 신은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미개한 시대에 인간이 지어낸 상상의 존재일 뿐이라고, 니체처럼 그들은 확신한다.

하라리도 여느 지식인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고도로 발달한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의 당연한 귀결이 영혼과 신의 부정이라고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확신하니까! 과학의 신격화다. 이것은 19세기의 이신론(理神論)과 맥락을 같이한다.

(내 눈에는 이들이 종교에 관한 한 하나같이 하나만 알고 열은 모르는 인간으로, 구제불능 멍청한 인간으로 보인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종교와 과학을 같은 범주로 생각하는 범주 오류[category fallacy]를 범하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인간이다. 스스로의 과학적 지식에 취하여 교만이 하늘에 닿은 인간이다. 나는 그들보다는 종교와 과학 그 중간에 위치한 철학에 심취했던 소크라테스 형님이 훨씬 마음에 든다. --너 자신을 알라!)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종교심과 양심]

나는 그들과 생각이 다르다.

첫째, 인간의 생각이 다른 동식물에서처럼 유기체적 알고리듬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영혼을 부정할 수 있는 ‘당연한’ 결과로 볼 수는 없다. 전생의 기억이 지워졌든, 인간의 육체에 처음으로 영혼이 깃들었든, 영혼이 물질적 차원을 초월하여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뇌를 조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간접적 증좌로 인간에게 고유한 종교심과 양심이라고 본다.

인간은 구석기 시대에도, 첫 형태는 대개 애니미즘이었지만, 종교가 없었던 때가 없었다. 종교는 믿음인데, 인간 사회의 정신적 위계질서(hierarchy)에서 왕의 자리를 차지하는 <신앙(*)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때까지 가능한 최고의 지식을 집대성하여 만든 가장 그럴 듯한 이론을 어느 집단에서 공동으로 받아들이는 신념 체계>이다. 이것이 문명이 발달할수록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보편 종교(universal religion)로 변했다.

(*오늘날 이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여성주의, 환경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진화론, 무신론 등의 형태로 존재하는 수가 많아서, 사람들은 그것이 종교인 줄도 자각하지 못한다.)

인간은 왜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그냥 아는 범위 안에서 살면 되지, 굳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나름대로 이론을 개발하여 그것을 크든 작든 어느 집단이나 공통된 신앙을 갖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영혼이라고 본다. 종교의 나라 인도에서는 아주 아주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나, 언어에 대한 전생의 기억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어서 전혀 배운 바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사기꾼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과학자들이 선입견을 버리고 이런 사람을 만나서 다각도로 검증해 보면, 나의 가설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태국의 특이한 남자도 좀 더 면밀히 추적해서 알아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양심은 선천적인 것]

구글 이미지
구글 이미지

다음은 내가 2012년에 쓴 《돌배기보다 판단력이 떨어지는 자들》에서 인용한 대목이다.

라이브사이언스(LiveScience www.livescience.com)에 선악 구별 능력은 선천적이라는 논문이 실렸다.

영국 컬럼비아 대학의 심리학자 킬리 함린(Kiley Hamlin)은 유아를 32명씩 세 집단으로 나누었다. 제1 집단은 생후 5개월, 제2 집단은 생후 8개월, 제3 집단은 생후 19개월에서 23개월이었다. 아이들은 각 실험군별로 사슴, 코끼리, 오리가 나오는 인형극을 보았다. 한 인형이 상자에 든 공을 꺼내려고 하자, 다른 한 인형은 도와주지만, 또 다른 한 인형은 자꾸만 방해한다. 장면이 바뀌어, 착한 인형과 못된 인형이 공놀이를 하다가 공을 떨어뜨린다. 이때 제3의 인형이 와서 공을 주워 주거나 주워서 가져가 버린다.

다섯달배기는 제3의 인형이 공을 주워 주기만 하면 무조건 좋아했지만, 여덟달배기는 32명 중 26명이 착한 인형에게는 공을 주워 주는 인형을, 못된 인형에게는 공을 주워 주지 않는 인형을 좋아했다. 생후 다섯 달까지는 선악의 개념이 없지만, 여덟 달만 지나면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정의감(to mete out punishment to wrongdoers), 선악 개념을 갖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착한 인형에겐 상을 주어야 마땅하지만, 못된 인형에게는 상을 주는 게 아니라 벌을 주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인간이 무리를 이루어 살면 이익도 얻지만 못된 사람 때문에 도리어 손해를 볼 수가 있다. 그러면 사회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악한 자에게 벌을 주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익을 본다. 인간의 사회성은 선천적임이 밝혀진 것이다. 생후 여덟 달이면 부모가 선악에 대해 미처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3번째 집단은 약간 바뀐 인형극을 본다. 알아도 실천하지 못하면 못된 인간으로부터 사회를 지키지 못할 것이므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실험한다.

먼저 착한 인형과 못된 인형을 보여 준다. 그러고 나서는 각각 16명으로 나누어 A그룹은 상을 주고 싶은 인형이 누구인지 고르라고 한다. B그룹은 착한 인형과 못된 인형에게 똑같이 상을 주고 나서 상을 빼앗아 보라고 한다. A그룹은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B그룹은 제3의 재판관으로 심판하고 중재하는 일이다.

두 경우 모두 동일한 결론이 나왔다. A그룹에서는 16명 중 13명이 착한 인형에게 상을 주었고, B그룹에서는 16명 중 14명이 못된 인형으로부터 상을 빼앗았다. A그룹은 자기에게 이익이 될 인형을 골랐지만, B그룹은 자신의 이익과 직접 관련이 없음에도 정의의 심판을 내렸던 것이다.

이 실험에서 유아는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생후 8개월이든 생후 약 20개월이든, 이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 사회는 약 80%가 착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선악에 대한 뚜렷한 정의감을 갖고 있어서 서로 돕고 살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선천적 양심이 인간에게 내재된 영혼이 생후 8개월이면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기 때문이라고 본다.

[존재는 인간의 긍정·부정과 무관]

둘째, 존재는 인간의 긍정과 부정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있다’. 종교에서 대부분의 신은 인간이 지어낸 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이 100%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확률적으로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99%, 99.99%, 99.9999%, 99.999999%, 이렇게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을 뿐, 도킨스나 호킹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새파랗게 입술을 바들바들 떨면서, 눈을 부릅뜨고 100%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가장 정확하고 정직한 답은 ‘모른다’는 것이다.

왜? 신이 존재하면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 존재유무는 하등 인간의 긍정·부정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죽는 순간 알거나(영혼도 있고 신도 있다면), 죽는 순간 영원히 모른다(영혼도 신도 없다면).

결국 인간이 끝내 알 수 없으니까, 그것은 믿음의 문제로 넘어간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영혼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고,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은 영혼과 알라의 존재를 믿는 것이고, 유물론을 믿는 사람은 영혼도 신도 안 믿는 것이다. 이걸 낯붉히며 다른 집단에게 강요할 까닭이 없다. 그러다가 의만 상하고 잘못하면 칼부림이 난다! 핵 단추를 누를 수도 있다!

하여간에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인간의 윤리와 양심은 바뀌거나 변질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최고의 가치관이자 윤리의 기준이니까! 그중에 밤낮으로 정의와 평등을 울부짖지만, 진보연하는 유물론자가 윤리 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현저히 떨어지는 집단이다. 기본적으로 그들의 과학과 철학과 종교는 불문곡직 가진 자에 대한 증오와 질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독과점하면 얼굴에 화장을 넘어 분장하거나 철가면을 쓰고서, 자기편에 서지 않은 사람들을 잡아먹지 못해 환장한다. 눈이 뒤집혀서 팔짝팔짝 뛴다. 위선과 독선의 정신적 식인종이여!

고등 종교를 믿더라도 신앙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거나 타 종교나 종파에 대한 톨레랑스(관용)가 부족하면, 그 또한 악마의 적자(嫡子)이긴 마찬가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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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제자야, 시골 갔다가 어제 왔다만, 피곤해서 오늘에야 답장한다. 내려간 김에 바로 귀경하지 않고 벚꽃이 흐드러진 대전에 들러, 한밭식물원과 카이스트와 갑천에 불쑥 찾아가서 벚꽃 아가씨들과 진한 밀어를 나누고 왔단다. 내 영혼의 육감과 내 육체의 오감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 떨리게 행복해 했단다.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하고 신비한 세계인지!

(2019. 4. 11.)

♡추신: 나는 ‘호모 데우스’보다는 ‘호모 아답탄스’(*) 쪽이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은 이제까지처럼 그에 잘 적응할 것이다, 영혼이 있으므로!

(*Homo adaptans: 내가 만든 라틴어 용어로 ‘적응하는 인간’이란 뜻)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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