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임윤찬 스승의 스승, 러셀 셔먼 '피아노 이야기'

임 군의 음악적 탐구·독서 이력 5년간 지도해 온 손민수 교수
미국 뉴잉글랜드음악원 시절 셔먼으로부터 인문정신 배워
일상의 세삼한 관찰·탐구 통해 상상력 자극할 것 등을 역설

반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18)과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46). 손 교수는 2017년부터 임 군을 지도해왔다. 임 군이 "내게 종교같은 분"이라는 손 교수는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 시절 러셀 셔먼 교수의 제자였다. 깊은 인문적 소양을 쌓으며 구도자적 피아니스트를 추구하는 계보가 한국에도 뚜렷해졌다.
반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18)과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46). 손 교수는 2017년부터 임 군을 지도해왔다. 임 군이 "내게 종교같은 분"이라는 손 교수는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 시절 러셀 셔먼 교수의 제자였다. 깊은 인문적 소양을 쌓으며 구도자적 피아니스트를 추구하는 계보가 한국에도 뚜렷해졌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열여덟살이 아니라 백팔십살 된 사람의 연주 같다"는 찬사를 들을 만큼, 기교적인 완성도를 넘어 ‘깊이’로 세상을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임 군의 음악적 탐구와 독서 이력 등은 그를 5년간 지도해 온 손민수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스타일과 ‘판박이’다. "산에서 피아노만 쳤으면 싶다", "유명해지는 것에 0.1%도 관심 없다"던 임 군이 손 교수를 "내게 종교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임 군을 이해하려면 손 교수와 그 스승인 러셀 셔먼(92, 전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까지 알 필요가 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인문학자, ‘건반 위의 철학자’ 셔먼의 음악 에세이 <피아노 이야기>가 새로 출간됐다(2020년 11월 은행나무). 원제 ‘Piano Pieces’에서 알 수 있듯 피아노를 매개로 한 영감 어린 토막글, 짧은 에세이와 아포리즘(잠언) 형식의 글 모음이다.
 
다섯 파트(게임·가르침·상관관계·악보·코다)로 된 이 책은 피아니스트나 음악 애호가들에게 이미 고전이며, ‘임윤찬 효과’로 판매가 급증해 일시 품절 상태를 빗기도 했다. 1997년 처음 나온 이 책 서두엔 "내 아내 변화경에게 바친다"고 돼 있다. 서울대 음대 피아노과 졸업 후 유학 시절 셔먼의 제자가 된 변화경(75, 전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과 올해로 결혼 48년차다.
 
임 군이 리스트 연주를 위해 탐독했다는 단테의 <신곡> 역시 평소의 3배 가량 더 팔린다고 전해진다(민음사). 임 군의 독서는 손 교수의 가르침, 손 교수의 스승인 셔먼의 인문정신에서 왔다. 셔먼은 손 교수가 그의 학생일 때 ‘율리시스’ ‘신곡’ 등 고전 감상문을 쓰게 했으며, 책 소개 잡지를 의무적으로 읽게 했다. "안 틀리게 쳤다고 칭찬받은 적은 없다. 오히려 놀림의 대상이었다. 반면 나만의 음악을 찾아온 듯하면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손 교수의 회상에 셔먼의 교수법이 녹아 있다.
 
셔먼은 음악가적 섬세함과 철학자적 깊이가 어우러진 글을 쓰는 것으로도 이름이 높다."생각하는 연주" "자신만의 개성 있는 연주"를 위해 문학서 철학서로 사고력을 넓히고, 일상의 세심한 관찰·탐구를 통해 상상력을 자극할 것 등을 일찍부터 역설해왔다. 그는 음악가를 ‘창조론자’ ‘진화론자’로 분류하며, 다 인정하는 자세다. 비록 예술이 재능과 시대에 큰 구속을 받지만 운명을 다듬고 고치는 데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따라서 그 해석 범위가 무한하다"는 것이다.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한 셔먼, 열다섯 살에 뉴욕 타운홀에서 데뷔했지만 전공은 인류학이다(콜롬비아대학교). 인문학적 소양 위에 삶에 대한 통찰을 담은 연주를 추구했다. 진정한 음악가가 되려면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관찰할 것, 기존의 틀·관습에 물음을 던지길 권한다. 피아노 연주란 "건반과 관객의 영혼을 동시에 누름으로써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라는 정의를 인용하며 셔먼은 책에서 말한다.
 
"피아노는 평범한 애정 표현 방식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는 상자요, 기계며, 덤덤한 골리앗이다", "피아노는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미묘하고 간접적이며 교묘하게 암시적이고 은근한 몸짓으로 유혹해야 한다."
 
셔먼에 따르면 피아노 연주란 "몸 전체의 유기적인 움직임"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피아노연주로 우주를 담아 내야 한다는 말을 매우 시적인 말로 표현한다. "넋을 잃은 사랑의 달콤한 향기뿐만 아니라 하찮은 벌레·독사·수증기, 심지어 은하계도 모두 피아니스트의 손안에 있다." 아름다운 소리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기 위해 건반 위에서 손가락 움직임, 척추·다리의 자세 등 ‘최고의 소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신체적 조건들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피아노교육 등 음악교육의 제도적인 문제, 선생과 연주자의 자질, 선생의 역할, 연주자의 마음가짐에 관한 셔먼의 언급 또한 가치 있다. 아울러 그는 인습적 음악교육을 신랄히 비판하며, 콩쿠르의 잘못된 관행과 부작용에 관해 질타한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한 두마디로 단정짓고 평가하기 이전에 평가자들의 자격과 권위를 먼저 논해야 한다는 말도 예리하다. 
는 ‘건반 위의 철학자’ 러셀 셔먼 음악과 삶을 스스로 정리한 글모음이다(러셀 셔먼 지음).2020년 11월 16일 출간). 임윤찬 효과’로 판매가 급증했다. /은행나무
는 ‘건반 위의 철학자’ 러셀 셔먼 음악과 삶을 스스로 정리한 글모음이다(러셀 셔먼 지음).2020년 11월 16일 출간). 임윤찬 효과’로 판매가 급증했다.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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