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지운다

 

수첩에서 이름을 지운다
접니다, 안부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전화번호도 함께 지운다
멀면 먼대로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살아생전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몸이 먼저 아는지
안경을 끼고도 침침해지는데
언젠가는 누군가도 오늘 나처럼
나의 이름을 지우겠지
그 사람, 나의 전화번호도
함께 지우겠지

허형만(1945~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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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탈 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어제의 젊은이들’은 다 어디로 갔지? 어제의 젊은이들이란 오늘의 나이든 사람들이다. 논리적 사고를 하면 이렇다. 승객들 중 젊은이들과 나이든 사람 비율이 반반이거나 또는 활동이 줄어든 것을 감안해 낮게 잡아도 7:3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그런데 아침이든 저녁이든 시간대를 막론하고 노인은 눈에 금세 띌 정도로 적다.

지하철을 꽉 채웠던 그 많던 ‘어제의 젊은이들’은 오늘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죽었다는 말인가. 집안에 박혀 꼼짝하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그도 아니면 다 전원으로 숨어들었단 말인가. 이렇듯 노년에 이르면 외출이 줄고 사람관계도 뜸해진다. 정물처럼 혼자 먼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주변에 개 한 마리밖에 없다.

이 시를 읽으며, 숨을 더 이상 쉬지 않는 것도 죽음이지만, 죽음이란 누군가의 기억으로부터 지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수첩과 휴대폰에 기록되어 있던 누군가의 이름을 지운다는 것은 명단을 정리한다는 뜻일 테지만, 정리 당하는 입장에 서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은 ‘죄송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우고’, ‘언젠가는 누군가도 오늘 나처럼 나의 이름을 지우겠지, 그 사람, 나의 전화번호도 함께 지우겠지’ 하고 생각한다.

핸드폰에 저장돼 있던 누군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지운다는 것은, 그 사람을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다는 모진 마음이겠지만, 앞서 말했듯 한편으로는 죽기 전에 재산과 물건을 정리하듯 사람관계를 정리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사람관계라는 게 재산이나 물건처럼 정리가 잘 될까? 혹여 지웠다가 다시 저장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럴 바엔 차라리 지우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누군가의 기억으로부터 지워지는 게 죽음이라면 아무도 죽고 싶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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