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마이니치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3분의 2인 66%가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는 아베노믹스의 하나인 엔저 정책에 따른 것으로 지난 10일 참의원 선거 전까지 기시다 내각을 궁지로 내모는 악재로 작용했다. /연합
지난달 18일 마이니치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3분의 2인 66%가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는 아베노믹스의 하나인 엔저 정책에 따른 것으로 지난 10일 참의원 선거 전까지 기시다 내각을 궁지로 내모는 악재로 작용했다. /연합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사망하면서 아베노믹스도 종지부를 찍을지 주목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0년 9월 건강상의 이유로 총리 자리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집권여당인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의 수장이었던 만큼 막후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는 아베노믹스가 지속된 배경으로 작용했다.

아베 전 총리는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경제를 살리려면 돈을 뿌려야 한다며 아베노믹스를 들고 나왔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돈을 찍어내고, 정부도 재정을 풀면 성장이 따라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주요 골자는 대규모 금융완화, 적극적인 재정정책, 과감한 성장 전략이다. 이를 ‘세 개의 화살’로 부른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아베노믹스의 돌격대장 역할을 수행해 왔다. 아베 전 총리의 임명으로 2013년 3월 일본은행 총재에 오른 그는 일본은행이 공급하는 본원통화를 2년 간 무려 2배로 늘리는 양적완화에 착수했다. 본원통화는 화폐 발행 잔액과 예금은행의 지급준비 예치금을 합한 것으로 통화량 증감의 원천이 되는 돈이다.

아베 전 총리는 이를 통해 디플레이션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물론 소비와 투자 활성화로 1991년부터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던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현재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2012년 11월 저점을 찍은 일본 경제는 2018년 10월 정점을 기록하기까지 71개월 연속 확장국면을 이어나갔다. 아베 전 총리 재임 기간 닛케이225지수도 1만395에서 2만3656으로 2.3배 올랐다. 이 같은 상승률은 일본의 역대 총리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실업률도 4.3%에서 2.2%로 떨어졌다. 아베노믹스가 장기침체에 신음하던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하지만 부작용도 컸다. 기대했던 바와 달리 기업들은 늘어난 이익을 국내에 재투자하기보다 해외 투자를 늘리는데 사용했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 제조업의 해외 생산 비율은 2010년 18.1%에서 2019년 23.4%로 5.3%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엔저(低)는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키웠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 의한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이 본격화되자 민간소비는 더욱 위축됐다.

금융완화와 재정확장 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경제의 펀더멘털을 약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56%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다. 특히 구로다 총재 취임 직전인 2013년 3월 말 13%였던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 비율은 지난달 26일 기준으로 50.4%에 달한다. 국채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 위험을 일본은행이 도맡는 양상이다.

내년 4월 임기가 끝나는 구로다 총재는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로 총리가 두 번 바뀔 동안에도 금융완화 기조를 고집하고 있다. 아베파(派) 역시 재정적자를 감수하고라도 대규모 금융완화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시다 총리는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구로다 총재 후임으로 자신과 경제운영 철학을 같이 하는 인물을 임명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그늘에서 당장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장기침체에 시달리던 일본에서도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올리면 일본은행이 채무초과에 빠질 위험이 있다. 국채 보유 비율이 50%를 넘긴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국채가격 하락으로 엄청난 평가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 당좌예금이 563조엔에 달하는 상황도 문제다. 중앙은행 당좌예금은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기는 돈을 말하는데, 금리를 올리면 일본은행이 시중은행에게 내줘야 하는 이자비용도 치솟게 된다.

일각에서는 금리가 2%만 올라도 늘어나는 이자비용이 11조엔에 달해 일본은행의 자기자본 10조엔을 넘어서게 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따르면 일본은행의 초과채무가 발생해도 정부가 손실보전을 할 수 없다. 차기 일본은행 총재 자리를 ‘독이 든 성배’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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