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에서 실시한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 긍정평가보다 부정평가가 훨씬 높게 나온다. 20% 차이다. 한 달 만에 완전히 역전됐다.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역전의 이유는 ‘윤 정부가 뭘 하는지, 뭘 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임기 초반이다. 윤 대통령도, 행정 각부 공무원들도 열심히 일하지 않을 리가 없다. 지난 5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물가 충격의 심각성을 얘기하면서 "앞으로 제가 민생 현장에 나가 국민의 어려움을 듣고, 매주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8일 제1차 비상경제 민생회의에서, 물가 급등에 따른 국민과 취약계층의 생계비 부담을 덜기 위해 수입 축산물 관세 면제 등 총 8천억 규모의 경제민생 대책을 내놓았다. 이런 생활밀착형 정책이나 대책이 수백 건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리 부정평가가 높을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구슬이 정책이나 대책이라면 꿰는 실은 ‘가치’다. 가치는 출마선언문, 현장 유세, 취임사 등에서 역설한 자유·공정·상식·법치 같은 것이다. 그런데 윤 정부가 내놓은 ‘서말의 정책·대책’과 이어지는 말과 행보 등은 이런 가치로 꿰어지지도 않았고 포장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국민들 눈에 도무지 비전이 안 보이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책·대책의 결론은 무엇을 올리거나 내리고, 늘이거나 줄이고, 없애거나 만드는 것 등으로 간명하게 정리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맞서 싸워야 할 대립물이 드러난다. 그렇게 해야 국민들 눈에 윤 정부가 뭘 하는지, 뭘 하겠다는 것인지 알아차린다.

가치와 정책과 인사는 하나의 이야기(story)로 꿰어져야 비전이 된다. 국민의 뇌리에 깊숙이 박힌다. 특히나 단절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 들끓는 정권 초기에는 가치와 대립물이 선명하지 않는 정책은 정책이 아니다. 비상경제·민생의 이름으로 수없이 많은 정책·대책을 내놔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두더지잡기 놀이처럼 된다. 정신없이 방망이질 하다가 시간 다 가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윤 정부는 취임사에서 언급한 자유의 가치를 현실에서 드러나도록 객관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대통령실과 정책 조언 그룹이 지금 해야 할 일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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