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북한의 대남공작,,. 가장 폭력적이고 공격적
1960년대 북한의 대남공작,,. 가장 폭력적이고 공격적
  • 유진
  • 승인 201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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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21 청와대 기습사건 당시 생포된 김신조의 모습
68.1.21 청와대 기습사건 당시 생포된 김신조의 모습

1960년대 북한의 대남전략은 표면적으로는 각종 선전선동기관을 내세워 위장 평화공세를 강화하면서 그 이면에서는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다양하면서도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대남공작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추진된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대한민국의 혼란스러운 정세를 틈타 기존에 구축해놓았던 지하당조직(간첩망)을 정비ㆍ확대하는 동시에 새로운 지하당조직을 만드는 공작을 벌였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기존에 해왔던 대로 연고(緣故)에 의한 공작을 통해 추진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와서는 북한의 대남공작이 보다 활발하게, 매우 공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60년대 북한의 대남공작은 그들이 대남공작을 벌여온 70년 역사상 가장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68년에 있었던 1.21 청와대기습미수 사건과 울진ㆍ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에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4.19와 대남공작 지도기구 확대

1960년대 벽두부터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청년학생들의 반정부투쟁이 거세게 일어나는 등 남한내부 정세가 심상치 않음을 판단한 북한지도부는 4월 14일과 20일에 각각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긴급 소집하고 대책을 토의했다.

특히 4월 20일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 정치위원회에서는 4.19를 계기로 남한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할 경우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것으로 보고, 그렇게 되면 혁신정당들이 급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한국의 계급적 토대로 볼 때 소부르조아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주로 혁신정당이 급격히 성장할 수 있고 정권의 대체세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면 새롭게 생겨난 혁신정당이 야당이 되어 양립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혁신정당이 정권의 대체세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북한은 이와 같은 판단 하에 다음과 같은 3가지 사항을 결정했다. 첫째로, 평화통일을 위해 남북 제정당 및 사회단체 연석회의를 열어 구국대책을 논의하자는 제의를 하는 등 위장 평화공세를 강화하기로 하였다. 남북 제정당 및 사회단체 연석회의 개최를 빙자한 위장 평화공세는 아직도 북한이 써먹는 수법이다.

둘째로, 정세호전에 대비해 지하당조직을 수습하고 역량을 확대 강화하는 등 조직공작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혁신정당에 대한 공작도 강화하기로 했다. 셋째로는 재일 조총련을 통한 대남 평화공세와 통일전선공작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3가지 결정 외에 대남공작을 보다 공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대남공작 전담조직을 확대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먼저 '4.19혁명을 지지하면서 남북연석회의를 개최하자'는 내용으로 4월 2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명의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노동당 중앙위 정치위원회 결정에 따라 대남공작 지도기구를 대폭 개편했다.

구체적으로 대남공작 기구인 중앙당 연락부와 문화부를 통합해 지도할 수 있는 노동당 내 중간 지도기관으로서 남조선국을 신설했다. 남조선국은 김일성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연락부와 문화부 등 대남공작 조직을 관장하는 지도기관이었다. 초대 남조선국 국장에는 당시 정치위원 겸 직업총동맹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던 이효순을 임명했다.

이효순은 일제강점기 발생했던 갑산공작위원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처형된 이제순의 동생으로, 당시 노동당 조직부위원장이었던 박금철 등의 추천을 받아 남조선국장에 임명한 것이다. 부국장에는 월남대사를 역임하고 있던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서철을 불러들여 임명하였고, 중앙당 연락부장 어윤갑과 문화부장 김중린은 각각 유임시켰다.

◇서울 등 전국의 지역담당 공작 기구 대폭 증원

다음으로 중앙당 연락부의 조직기구 및 역량도 확대했다. 연락부에서는 지역담당 조직을 확대하여 도별 단위로 공작과를 구성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 경기, 강원, 충북, 충남, 경북, 경남, 전북, 전남 등 9개의 지역담당과로 개편하고 구성원들도 대폭 증원했다.

그리고 연락부의 상층공작 부문기구를 확대 개편하여 국회공작과, 여당공작과, 혁신정당공작과, 통일전선공작과, 합법공간조성공작과로 구성하고 공작단위별 책임지도원제를 신설했다. 연락부는 특히 공작원들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기 위해 공작원선발과를 대폭 확대 개편하고 지도원들을 각 지방으로 내려 보내 남한에 연고를 두고 있는 공작원 적임자를 물색 선발하는 동시에 대남공작부서에서 일할 간부들을 선발하는데도 힘을 집중했다.

이와 함께 공작원 기초교육기관인 중앙당 정치학교(일명 순안정치대학, 695군부대)의 기구와 교원 및 교육생들을 증가시키고 공작원들을 비밀리에 수용해 대남 침투훈련 및 공작교육을 시킬 수 있는 초대소(안가)를 확충하는 사업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연락부의 해외공작 부문도 종전 1개과에서 3개과로 확대 개편하고 동베를린 및 광동 해외공작거점을 증원했다.

한편 연락부에서는 공작원들의 대남침투와 복귀를 담당 안내하는 작전부문의 기구와 산하 연락소 조직을 대폭 확대했다. 종전의 해상지도과와 육상지도과로 되어있던 것을 서해지도과, 동해지도과, 육상지도과로 개편했다.

또한 개성과 해주, 원산과 평강 등 4개 지역에 있는 각 연락소의 기구도 확대해 연락소 참모장제를 신설하고 참모장 중심으로 산하 전투방향을 장악하여 공작원 침투와 복귀를 통일적으로 장악 지도하도록 했다. 그리고 침투작전에 필요한 쾌속선박(간첩선)과 공작원들을 남한에 안전하게 침투시키고 복귀시킬 안내요원들을 확충하는데도 주력했다.

중앙당 문화부내에 조총련 관련 공작을 총괄하는 기구를 만드는 동시에 산하기구들을 확대 개편하여 대남선전선동 공세를 강화하도록 하였다.

◇조평통 초대위원장에 벽초 홍명희

1958년 5월 1일 김일성과 벽초 홍명희 뱃놀이 사진을 찍다.
1958년 5월 1일 김일성과 벽초 홍명희 뱃놀이 사진을 찍다.

문화부 기구 가운데 대남선전선동 지도과를 대남방송선전과, 대남출판물선전과, 대남특수기구선전과, 대외우회선전과, 대남정치행사과 등 5개과로 확대해 대남선전선동을 전문화하도록 했다. 또한 대남방송 능력을 대폭 증대시키기 위해 대남방송위원회를 확대개편하고 대남 및 대외 전용 방송인 평양방송의 출력도 대폭 증강하고 방송시간도 22시간으로 늘렸다.

출판물에 의한 대남선전선동을 강화하기 위해 대남출판물을 전문적으로 창작 및 제작하는 출판사(40호실)와 대외 및 대일 선전물을 제작하는 출판사로서 '조국사'를 창설하고 '조국' 제호의 월간지(화보)를 발간하도록 했다.

1961년 5월 13일에는 북한의 위장 평화통일 공세를 앞장에서 수행할 선전선동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소설 '임꺽정'의 작가인 홍명희가 초대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는 위와 같은 조직개편 및 확대, 공작역량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혼란스러운 정세를 틈타 각종 유형의 대남공작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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