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세력에게 탈이념 세력이 패배한 역사
이념 세력에게 탈이념 세력이 패배한 역사
  • 강지연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9.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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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세월호 등 음모론에 넋놓고 당한 보수. 민주화 586에 대한 산업화 586의 ‘주눅’ 탓

-5.18후 산업화 586들 실력양성 핑계로 입신양명 선택. 전두환 정권의 졸업정원제도 한몫

–이념세력과 탈이념 세력의 차이. 이념, 세계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해석. 폭발적 위력 발휘

산업화 586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주도권을 민주화 586에게 넘겨준 역사다. 나는 2014년 세월호 직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8:9로 패배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그 다음 날 아침회의 장면을 기억한다. 당 지도부는 ‘선방’했다며 화기애애하게 선거결과를 자축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작고하신 위대한 충청도 작가 이문구 선생의 수필집 제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선진국에서는 세월호 같은 국가적 재난이 일어난 후 집권여당에게 힘이 쓸리는 것이 정상이다. 미국 9.11 테러 당시 부시 정부는 곤경에 처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얻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쇼크와 분노, 격분과 비판, 부끄러움으로 인한 국민의 집단 의욕상실, 그리고 그로 인한 실물경제 침체는 많은 면에서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상황과 흡사하다.

다른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태도다. 9.11. 테러 직후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자(It’s OK to move on)!”고 호소했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 발생 일주일 만에 토크쇼에 출연해 “살아남은 자는 슬픔을 이겨내고 세상에서 해야 할 제 역할과 책임을 다하자.”고 호소했다. 그 이듬해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를 거뒀다. 부시 대통령은 2차대전 이후 중간선거에서 이긴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 됐다.

◇세월호와 광우병, 그리고 효순·미선양 사건

에번 램스타드 전 월스트리트저널 서울 특파원이 “세월호 참사를 이용해 박근혜 정부를 흔들고 있는 한국 좌편향 활동가들의 모습은 2008년 두 달간 이명박 정부를 무력화했던 광우병 시위를 연상케 한다”고 지적했듯 세월호 음모론은 광우병 음모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이전에 효순이·미선이 사망선동이 있었고, 그 중간 중간 천안함 음모론과 4대강 선동이 있었다. 최근 보수의 역사는 진보좌파 진영에서 도래한 음모론에 매번 넋 놓고 당한 역사로 점철돼 있다. 그 핵심에 민주화 586세력에 대한 산업화 586세력의 ‘주눅’이 있다.

산업화 586은 주눅 든 세대다.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5.18 민주화 항쟁. 5.18은 운동권 주류가 낭만적 리버럴에서 맑시즘으로 넘어간 분수령이다.

산업화 586은 주눅 든 세대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5.18 민주화 항쟁이다. 대한민국 운동권의 주류가 낭만적 리버럴에서 맑시즘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분수령을 제공했다. 586들은 전두환 정권이 광주에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과정을 목격하거나 전해 들으면서 세대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큰 충격을 받은 그들은 유신반대 운동을 했던 기존 운동권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에 만족할 수 없었다. 서울역 회군 사건을 겪으면서 길 잃은 양떼 같은 처지에 몰렸던 운동권 세력들은 곧 주체사상(NL)과 공산혁명(CA 이후 PD)이라는 잘못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들, 당시 운동권들은 전두환 군사정권에 저항했던 순순한 민주화 세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디서 약을 팔아? 내가 X세대 93학번이라고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그 당시 운동권 주동자였던 사람들 중에 북한 단파 라디오 한번 안 받아적은 사람 없다는 데 내 손모가지를 건다.”

◇운동권은 자유민주주의 아닌 좌익혁명 추구

소위 운동권 세력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좌익혁명을 추구했다는 사실은 공지의 사실이었다. 물론 안철수 선생처럼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딨냐”고 철썩 같이 믿는, 지나치게 해맑은 영혼도 있다.

안철수 선생의 서울대 의대 동기들 증언에 따르면 안 선생은 대학 시절 사교활동이 극히 제한적이었던(까놓고 말해서 나중에 아내가 된 김미경하고만 놀았단다), ‘히키코모리’의 시조새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운동권들의 밑장빼기를 순순히 믿었을 가능성도 있다.

낭만적이기는 하나 민주주의를 주장했던 운동권 세력이 자유대한민국의 적통을 부정하고 폭력혁명을 추종하는 극단적인 세력에게 완전히 장악당했던 원인을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 이유가 이념세력과 탈이념세력의 차이에 있다고 본다.

이념이 무서운 것은 세계를 하나의 프레임에 의해 일관되게 보기 때문에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냉전 시대 좌익 이념에 대항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주의, 합리주의, 개인주의 이념으로 무장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좌익 이념에 대항할 논리를 개발해 왔다.

산업화 586들은 그 어려운 길을 가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려면 우선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핑계로 입신양명이라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 당시 우익들이 ‘회피’에 몰두한 배경에는 전두환 정권의 졸업정원제도 한몫 했다. 기성의 문화를 대체할 만한 문화를 형성하려면 어느 정도 쪽수가 돼야 한다.

베이비붐 끝자락에 태어난 원체 인구가 많았던 데다가 졸업정원제로 대학문호가 넓어지면서 급격하게 숫자가 증가한 386 대학생들은 기성세대와 소수의 우익을 압도할 만한 새로운 운동권 문화를 창조했다. 서구의 68세대가 베트남전을 계기로 반전운동 한다고 몰려다니면서 세력을 형성한 과정과도 유사한 데가 있다.

이념에서 밀리고, 쪽수에서 밀린 산업화 586은 이후 민주화 586들의 횡포에 ‘침묵’으로 대항했다. 역사적으로 침묵은 동의로 인식되어 왔다는 걸 고려할 때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 셈이다. 지금 새누리당 주류를 장악한 산업화 586들이 현재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들은 민주화 586들과 진지하게 싸워본 경험이 없다. 무상수당,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 증원, 난민법처럼 국민의 공분을 사는 좌파 정책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여전하다. 침묵하거나 동조한다. 동조를 하려면 차라리 화끈하게 할 것이지 꼭 쪼잔하게 한다.

진보좌파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치면 차라리 ‘1만원 받고 2만원 콜!’을 외치는 게 아니라 ‘1만원은 받고 그 대신 난 9000원’이라고 외치는 격이다. 안 받을 거면 몰라도 이왕 받을 거면 1만원 주겠다는 사람 뽑지, 9000원 주겠다는 사람을 뽑겠나.

기본적으로 산수가 되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 급식충들도 ‘한번 찐따는 영원한 찐따’라는 진리를 알고 있다. 일진에게 괴롭힌 당하던 진짜들이 버젓한 서울대생 타이틀을 달고도 이젠 동네 건달이 된 일진 그림자만 봐도 오금이 저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80년대 진성 빨갱이는 모두 한국당과 인연 맺고 있어

과거 노동운동 당시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

지금의 30대와 40대가 잘 모르는 사실 중 하나는 80년대 당시 헌신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복무했던 ‘진성 빨갱이’들은 대다수 지금 소련 연방 붕괴 이후 생각을 바꿔 자유한국당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중당의 김문수, 이재오가 대표적이고, 박종철 열사가 죽음으로 지켜내려 했던 선배 박종운도 있다. 그 유명한 <강철서신>의 김영환은 지난 2008년 한나라당 총선 출마 제안을 받은 바 있다.

사람은 20대 이전까지의 경험에 지배당하는 존재다. 그래서 30대 이후의 전향은 죽음처럼 고통스럽다. 그 전까지 목숨을 걸었던 생각과 가치관이 총체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자아의 완벽한 붕괴에 직면한다. 그래서 전향은 사이비종교 신자가 각성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은 기존 밥벌이와 인맥에 얽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네트워크 안에 머물기 십상이다. 40대 이후 전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페친 민경우 선생이 이 어려운 일을 해낸 것 같다. 구로 지역 등지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서민 계층의 아이들과 직접 부대낀 경험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한다. 지금 그가 지지하는 정당이 자유한국당인지 민주당 또는 정의당인지 알지 못한다. 그의 글에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단으로서의 수학 교육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모든 586들에게 강제로 읽히고 싶은 글이다.

◇전향자를 강남좌파가 평가절하하면 안돼

혹자는 이들을 일러 ‘변절자’ 운운하는데 이들 전향자 그룹의 결단은 민주화 경력을 팔아서 뱃지 달고 강남에 살면서 자식 외고 보내는 강남좌파들이 함부로 평가절하할 일이 아니다. 이들은 부자들에 대한 원한과 시기심을 민중에 대한 연민과 정의로 위장하길 거부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결단을 지지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들 중 “그때 내가 잘못 생각했노라”고 공개적으로 진지하게 고해성사를 한 이는 김문수와 김영환뿐이라는 점이다.

끝으로 존경하는 페친 이인철님의 글을 산업화 586과 민주화 586들에게 바친다.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를 보수라고 칭하고, 꿈을 실현한다는 이유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반드시 하는 태도를 진보라고 부른다.

하지 않거나 하는 것으로 인해서 주위에 피해를 입힌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태도이다.

책임지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우파라고 부르고, 남이 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입장을 좌파라고 부른다. 어느 경우나 본인의 책임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입장이다.”

한 마디로 둘 다 나가 죽으라는 말이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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