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모
연상모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양국은 그간 서로에 대한 인식과 실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하지만 양국관계가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예로는 고구려 역사와 관련한 중국의 동북공정사업, 사드 관련 중국의 경제보복조치 및 ‘3불(不)’ 강요, 시진핑 주석의 한반도 속국 발언, 문재인 대통령의 ‘한중 운명공동체’ 발언과 북경대학 연설에서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이고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언급한 부분 등이다.

양국관계에 대한 이러한 우려는, 중국에 대한 한국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한국에 강압적으로 대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려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는 양국 국력의 비대칭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양국이 수교 초기 서로에 대해 가졌던 기대는 이제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의 주권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중국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 질문과 관련, 최근 중국에 대한 필리핀의 대처가 관심을 끌고 있다. 6월 말에 퇴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정리하라"는 지시를 퇴임 직전에 내렸다. 이는 그가 대통령 취임 직후 남중국해(서필리핀해) 개발 등을 놓고 중국에 줄곧 유화적인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보인다.

필리핀과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오랫동안 영유권 분쟁을 벌여왔다. 남중국해는 중국뿐 아니라 필리핀·베트남 등 여러 동남아국가들과 연해 있는 바다로, 남중국해가 중국의 해안선과 만나는 부분은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남중국해의 대부분을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들어서는 실제 행동으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면서, 인공섬 건설과 군사기지화를 추진하고 있다. 2012년에는 필리핀과 분쟁 중인 스카보러 암초지역에서 필리핀과 대치 끝에 정기적인 법집행순찰을 확립하고 필리핀을 축출했다. 이에 대항해 필리핀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고, 2016년 동 재판소는 판결에서 필리핀의 핵심 주장을 대부분 수용해 중국에 완패를 안겼다. 하지만 중국은 강력히 반발하면서 이 판결의 수용을 거부해 왔다.

이에 대해 두테르테 대통령은 유화책의 일종으로 2018년 남중국해 공동탐사를 제안했고, 중국도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필리핀의 바람과 달리 유화책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공동탐사에 소극적이던 중국이 오히려 분쟁 도서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등 최근 들어 더 강경일변도로 흐르고 있다. 필리핀이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선의를 기대하며 유화책을 채택했으나, 중국은 이를 필리핀의 약함으로 인식하고 더욱 강압적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퇴임 직전에 "중국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마르코스 신임 대통령도 두테르테의 유언을 지키려 하고 있다.

이러한 필리핀과 중국 관계는 한국이 중국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한국과 필리핀은 중국에 대해 ‘국력의 비대칭’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있어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은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다. 중국에 대해 선의만을 바라는 것은, 오히려 중국의 멸시만을 불러와 더 강압적인 태도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앞으로 한중관계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중국에게 ‘신뢰할 수 있는 이웃이지만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이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우리의 원칙과 이익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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