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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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눈치를 보는 남성성이 일반화된 지 꽤 오래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교조화된 여성성에 도전하는 간 큰 남성은 거의 사라졌다. 문제는 현재 지구촌을 엄습하고 있는 바이러스와 체제를 달리하는 야만적인 대륙세력으로부터의 전쟁, 그리고 이로 인한 총체적 글로벌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국가들의 협력과 단결이 너무도 절실한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하버드대 멘스필드(Harvey Mansfield) 교수는 저서 <남성적인 것에 대하여> (Manliness)에서 가장 바람직한 남성성은 ‘사유하는 남성성’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남성성에 대한 과학적·생물학적·진화론적 접근이 아닌, 철학적·인문학적 결과로서 야수적 본성을 가진 충동적인 남성성을 억제하고, 절제된 중용의 덕목을 실현시키는 남성성을 길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인류역사에서 허풍의 남성성이 용맹과 기개로 변신해 폭발적인 역사발전을 가능케 만들었던 역사의 역설(Paradox)은 늘 존재했다.

허무주의·초월주의·실존주의·유물주의·문화적 상대주의의 추구,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 자유·민주·공화에 입각했던 공동체의 가치와 신념 붕괴가 미국을 비롯한 21세기 자유민주주의국가들 전반에 만연하고 있다. 반면 유라시아대륙을 지배하는 러시아·중국·북한 등과 같은 전체주의국가의 야만적 남성성은 더 크게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어쩌면 통일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이들 독재국가의 야만적 남성성이 페미니즘과 젠더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나약해진 남성성을 충분히 압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푸틴처럼 타락한 야수적 남성성은, 성찰없는 맹목적인 아집과 독선으로 항상 권력과 힘을 추구하는 약탈적 요소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전쟁과 약탈을 일삼는 부족적 집단사고에 빠져있는 야만적 남성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신념을 중심으로 남녀가 하나의 자유시민으로 뭉치는 것이 급선무다. 닥쳐온 문명, 가치, 체제위기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 속에 남과 여의 이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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