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6.25를 국제전으로 바꾸다
이승만, 6.25를 국제전으로 바꾸다
  • 글 최응표 한국사바로알리기미주본부 대표/ 영역 남신우 북한인권국제연대 대표
  • 승인 2019.05.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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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전쟁 6.25 [1]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19만 8,380명이 일시에 38선을 넘어 남침을 개시합니다. 작전명은‘ 폭풍’, 새벽 4시에 벌어진 기습 작전이었습니다. 동족이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이 침략 전쟁으로 한반도는 3년 1개월간 피비린내에 잠기게 됩니다.

애초부터 상대가 안 되는 전쟁이었습니다. 병력에서는 두 배의 차이가 났습니다. 북한은 탱크를 242대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한 대도 없었습니다. 북한은 211대의 비행기를 가지고 있었고, 이 중 170대가 전투기였습니다. 대한민국이 보유한 비행기는 겨우 22대 였고, 모두 연락용이나 훈련용 연습기였습니다.

기습에, 막강한 화력에 대한민국이 순식간에 그리고 처참하게 뚫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6월 28일 아침 서울 중앙청에는 인공기가 휘날렸습니다. 그날부터 6월 28일 아침까지 대한민국은 넋 놓고 당하기만 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승만은 맥아더에게 전화를 걸었고 미국의 트루먼을 재촉했습니다.

그는 6ㆍ25 전쟁이 단순히 한반도에서 벌어진 내전이 아니라 공산주의와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래 지도는 그 무렵 세계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그린 것이고, 유일하게 남한만 빨간 색에 물들지 않고 자유 국가로 남아있습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까지 공산화가 되면 동북아시아에서 자유 민주주의 세력이 위기에 처할 것이고 그래서 전 세계 자유 민주주의 국가 들은 결코 대한민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였습니다. 그 결과 6ㆍ25 전쟁을 국제전으로 바꿔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6ㆍ25 전쟁 침략 세력은 북한, 중국, 소련 세 나라였고 연합군은 미국, 캐나다, 콜롬비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남아 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영국,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터키 등 무려 16개국이 직접 참전하였고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 5개국은 의료를 지원하였습니다.

이름도 낯선 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위해, 자유의 이름으로 기꺼이 자기 나라의 청년들을 전쟁터로 보냈던 가장 아름다운 전쟁이 6ㆍ25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 고귀한 죽음을 헛되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던 그 작은 나라가 이제 세계인이 경이롭게 바라보는 놀라운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선 것입니다. 그것은 자유의 동맹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습니다. 국가의 이익이 아닌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전쟁, 그것이 바로 6ㆍ25 전쟁이었습니다

[영어판]

On June 25, 1950, 198,380 North Korean soldiers crossed the 38th Parallel and began the invasion of South Korea. For three years and one month, the Korean Peninsula was soaked in blood through this war of invasion in which a brother aimed a rifle at the heart of his own brother.

From the very beginning, this was not even a contest. It was completely one-sided. In terms of military power, the North had much more than double the South’s strength. North Korea possessed 242 tanks. South Korea had none. The North possessed 211 planes in its air force, of which 170 were fighter planes. The South had only 22 planes, and all of them were either light planes or planes for training.

It was inevitable that the Republic of Korea would be so suddenly and calamitously pierced by such a strong and sudden attack. On the morning of June 28th, the North Korean flag was hoisted at Joong Ang Building (the Central Government Building) in Seoul. Then, did South Korea just spinelessly let themselves be rolled over by the invading North Korean forces between June 25th and the 28th? No, not at all.

President Syngman Rhee called Gen. Douglas MacArthur Preface in Japan, and pressed President Truman of the United States. Rhee was perhaps the only person at the onset of the war who realized that the Korean War was not just an internal conflict local to the Korean Peninsula, but an international fight against communism.

The map shows the spread of communism in 1950 worldwide. Uniquely, only South Korea remained blue and free, in a sea of red, communist nations. Syngman Rhee knew that if South Korea became communized, the free and democratic forces in Northeast Asia would be at peril, and therefore was sure that the free and democratic nations all over the world would ultimately never give up on South Korea. As a result, the Korean War became a global conflict, in a tiny area called the Korean Peninsula.

The invading forces were North Korea, Red China, and the Soviet Union, while the allied forces were comprised of the United States, Canada, Columbia, Australia, New Zealand, the Philippines, Thailand, South Africa, Ethiopia, the United Kingdom, Belgium, France, Greece, Luxembourg, the Netherlands, Turkey – a total of 16 nations that sent armed forces; additionally, Sweden, India, Denmark, Norway, Italy – a total of 5 nations sent medical units to South Korea.

Perhaps the Korean War is the most ‘righteous’ war, in that nations sent their young citizens without hesitation, to fight a war in a foreign land in Asia with an unknown name, for freedom.

And the Republic of Korea had not made their exalted deaths futile. The once poor and weak nation is now a nation that is an economic power that others look with wonder and amazement. That was a miracle produced from the alliance of freedom. The Korean War was a war to protect the value named freedom, not to advance individual country’s advantage.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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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자 2019-05-11 14:57:44
It's never too late. 지금이라도 역사 바로 알리기/알기가 시작되어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