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비핵화 외쳐도 北이 핵포기 못하는 이유
文, 비핵화 외쳐도 北이 핵포기 못하는 이유
  • 이민수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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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무기 개발 역사와 핵무력 현황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사상초유 원폭 실험이 성공함으로서 핵시대가 개막되었으며, 태평양 전쟁의 종식인 인류최초의 핵세례를 받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동년 8월 15일로 앞당겨 지게 되었다.

핵무기는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각 각 1발씩 떨어져 사상미증유의 참혹한 인명 살상 및 문명 파괴 참사를 일으켰다. 이렇게 절대궁극무기로서의 위력과 효과가 전 세계에 인식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핵군비축소 노력과는 정반대로 그 위력의 대형화와 성능의 고도화가 경쟁적으로 촉진되어 핵무기가 9개 보유국으로 확산되었다.

북한 핵문제가 국제문제로 공론화된 시점은 영변 핵시설에 대해 미국이 의구심을 가진 1989년이지만 북한이 핵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 종식 직후인 1950년대부터다. 6.25전쟁 당시 미국이 북한을 핵폭격하려 했던 것에 두려움을 가졌던 북한은 휴전 직후에 인민군을 재편성하면서 인민무력부 내에 ‘핵무기 방위부’를 설치했다.

◇북, 6.25전쟁 직후부터 핵개발 시작

그리고 1956년에 30여명의 물리학자를 소련의 ‘드부나 핵 연구소’에 파견했는데 이것이 북한 핵개발 노력의 효시가 된다. 또한 1959년 9월 체결된 조소원자력 협정은 북한 핵개발 정책의 공식적 출범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1962년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했다. 이어 김일성대학과 김책공과대학에 핵 연구부를 창설, 자체 핵개발 요원을 길러내기 시작했다. 1965년 6월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IRT-2000 원자로를 도입, 본격적인 핵 연구를 시작했다.

북한은 국내에서 핵 개발을 위해 은밀하게 노력하는 한편, 국제적으로는 연막전술을 펼쳤다. 1974년 7월 IAEA에 가입, 국제원자력 안전 체제에 들어갔으며, 1989년부터 1991년까지 IAEA 이사국이 되기도 했다. 한국이 국제원자력 기구에 국장급을 파견한 데 반해 북한은 대표부를 상주시키는 등 자신의 핵무장 의지를 감추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이름으로 위장공세를 펼쳤다. 1980년대 이전엔 국제사회로부터 핵무장 의혹을 받은 측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었다.

북한이 이처럼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핵무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이들이 처한 국제관계에 연유한다. 북한은 6.25전쟁 중 미국의 공군력과 핵무기를 매우 두려워했다. 특히 소련과 중공이 한국전쟁 참전 중 보인 북한에 대한 오만하고 전우애 없는 고자세는 북한으로 하여금 “독자적 전쟁 수행 능력” 확보라는 군사전략적 자극과 유인을 가지게 했다.

자료사진 : 구글이미지 캡쳐
자료사진 : 구글이미지 캡쳐

뿐만 아니라 1960년대 중반 중·소 갈등의 노골화는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 편도 소련 편도 아닌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어 군사적 자립을 강조하는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하게 된다.

1985년 12월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 자신의 핵 계획이 평화 목적에 국한되는 것임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고자 했다. NPT 가입국은 18개월 이내에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하고 동 기구로부터 핵사찰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북한은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며 버텼다.

미국은 1989년 7월 영변에 핵폭탄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재처리 시설이 있음을 탐지 발표했다. 또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 등 군사 전문잡지들은 영변 시설이 핵무기 제조 시설임을 주장했다. 미국은 이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국제 공론화하기 위해 프랑스의 상업용 정찰위성 스폿(SPOT)이 촬영한 영변 핵시설 사진을 일본 東海대학 정보기술센터가 판독 공개하게 했다.

◇급한 불만 끄자는 식의 제네바 핵합의

▲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새 기록영화 "어머니당의 품" 제5부에서 강석주 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당시 서명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새 기록영화 "어머니당의 품" 제5부에서 강석주 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당시 서명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이처럼 국제문제로 쟁점화된 북한 핵 문제는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핵합의가 체결될 때까지 밀고 당기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1994년 6월 미국의 북한 핵시설 폭격 계획은 긴장이 최고점에 이른 순간이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한 후 미국은 북한과 엉성한 합의를 해 소위 제1차 북한 핵 위기를 종결시킨다.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 핵합의를 통해 북한 핵 활동을 동결시키는 수준에서 합의를 하고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하는 대가로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공짜로 경수로를 지어주고 중유 제공 등 경제 지원을 한다는 약속을 했다.

1994년 10월 북한이 미국과 급히 합의를 이룬 것은 김일성이 사망한 직후 권력이 공고화되지 못한 김정일이 미국과 계속 다툴 경우 이득이 없을 것이며, 일단 미국이 동결 수준에서 북한 핵을 허락하니 미국의 제의를 받아들여 당분간 시간을 벌자는 의도였다.

소련이 몰락하고, 중국마저 공산주의를 포기했을 뿐 아니라 한국과 수교까지 한 마당에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 역시 소련이 와해된 마당에 북한 공산주의가 미국에 대한 전략적 위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美, 9.11 이후 북핵을 핵테러 위협으로 보기 시작

그러던 중 미국이 북한의 핵을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보아야 할 대사건이 발생한다. 2001년의 9·11 테러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건 이전까지는 미국이 북한의 핵폭탄을 핵 확산의 문제로만 보았으나 북한의 핵기술이 아랍권 국가들로 확산되면서부터 문제는 복잡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즉 9·11 이후 미국은 북한 핵을 핵 테러리즘 문제로 부각시키게 되었다. 돈이 궁한 북한이 테러분자들에게 핵폭탄을 판매한다면, 미국은 당장 핵 테러의 위협에 당면할 판이었다. 고로 북한에 단 한 발의 핵폭탄 보유조차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더구나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통해 핵개발을 시도한다는 정보도 확보하고 있었다. 제네바 핵협정은 결국 미국과 북한간의 대립으로 파탄되고 북한의 핵외교 판정승으로 종결되어 핵무장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북한은 목숨을 걸고 죽기 살기로 핵을 개발했다. 북한의 위정자들은 김일성의 유훈인 “조선반도 완정”을 위한 절체절명의 수단 확보를 위해 핵무기 개발을 결코 중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핵폭탄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비록 고난의 행군으로 인구의 10%가 아사하는 극한적인 경제위기하에서도 군사력은 막강하다며 북한 주민들에게 강성대국이 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으며, 미래의 통일조선 지배자가 될수 있다는 위력시위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제네바 핵협정을 파기하고서 3자회담이다 6자회담이다 하면서 시간벌기작전과 벼랑끝 전술로 핵개발에 급피치를 가하면서도 위장평화공세로 이를 은폐하고 결국 초지일관 핵무장을 관철한 것이다. 드디어 2006년 제1차 핵실험으로 세계9번째 핵보유국으로 등극하더니 2017년엔 6차핵실험을 끝내면서 당당하게 핵무기의 고도화까지 완성함으로서 핵강대국들이 지닌 핵무기체계의 구색을 거의 다 갖추게 된 것이다.

◇북한 핵위력, 파키스탄·인도·이스라엘 수준

북한은 세계굴지의 고순도 우라늄 원광을 보유하여 핵분열물질인 U-235의 자급이 가능하다. 연구용원자로에서도 pu-239를 추출하여 원자탄과 수소탄을 양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액체연료를 고체연료로 전환하여 상시연료주입이 가능해지고, 탄두의 소형화와 경량화를 이뤄 단/준중/중/장거리 타격은 물론 SLBM진수로 잔존성과 비익성이 고도화되었다.

또한 재돌입다탄두(MARV)와 강전자파(EMP) 폭탄까지 개발하여 초전에 비군사목표에 대한 대량파괴와 C4ISR체제 마비가 가능해진 전방위 직응 대량보복 핵타격능력까지 구비함으로서 미국과 그 동맹국에게 결정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현재 15~60개 핵탄두를 보유했으며, 2020년에는 최소 30개에서 최대 100개까지 늘릴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어느 핵보유국도 핵무기의 정확한 현황을 공개한 적이 없으므로 발표된 수치는 추정 숫자 일 뿐이다.

탄두 수 보다도 총위력을 본다면 북한이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과 막상막하이고 수소폭탄 보유도 부정할 수 없다. 북한이 무려 6MT(TNT 600만톤에 해당)이란 천문학적 총위력의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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