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한 지난 13일 서울 외환시장은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5.2원 내린 달러당 1306.9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물가를 잡기 위해 이달 26~27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 또는 단번에 1.0%포인트 올리는 ‘울트라 빅스텝’을 단행할 경우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9.1% 상승했다. 이는 1981년 12월 이후 최대폭이었던 지난 5월의 8.6%를 뛰어넘은 것이다. 아울러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들의 전망치 8.8%보다도 높은 것이다.

이에 따라 미 연준의 기준금리도 가파르게 오르면서 한미 간 금리역전이 현실화될 공산이 커졌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2.25%로 미국의 1.50~1.75%보다 높다. 하지만 미 연준이 자이언트스텝만 밟아도 2.25~2.5%가 돼 우리나라보다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이탈을 촉발시켜 원화가치 하락이 가속화될 수 있다.

외환당국은 원·달러 환율의 안정, 즉 원화가치 방어를 위해 올해 1분기에만 역대 최대 규모인 83억1100만 달러를 순매도했다. 이로 인해 외환보유액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실제 지난 6월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382억8000만 달러로 전달보다 94억3000만 달러 감소했다. 이는 2008년 11월의 117억5000만 달러 이후 13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통상 원화가치 하락은 우리나라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혀 외화 유입으로 연결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자재와 곡물 등 수입물가를 높이고, 이는 다시 기업실적 악화로 이어져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이 이탈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규모 외화부채를 일으키지 않고 달러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역수지에서 흑자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올해 상반기 무역적자는 103억 달러를 기록하며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기존의 상반기 역대 최대 무역적자 기록은 1997년의 91억6000만 달러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무역수지는 55억28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만일 이달 말 무역적자가 확정되면 2008년 이후 14년 만에 4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특히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경상수지 적자를 막아주던 본원소득수지, 즉 해외에서 우리 국민이 벌어들이는 돈도 최근 들어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원화가치 하락은 원화로 표시된 우리나라 금융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금융시장 전반에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 원화가치 가 떨어지는 것은 달러 환산 수익률의 하락을 말하는 만큼 자금 회수의 강력한 유인이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 연준이 자이언트스텝이나 울트라 빅스텝을 단행하면 설상가상의 국면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를 계속 팔아치우면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려 더욱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최근 들어 한미 통화스와프를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평시에도 우리나라 외환시장과 환율 안정에 도움을 주지만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마이너스 통장처럼 급할 때마다 달러를 빌려 쓸 수 있기에 금융위기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체결된 바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해 말 더 이상 연장되지 못하고 종료됐다.

원화를 맡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빌려주는 입장의 미국이 통화스와프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나 필요는 크지 않다. 따라서 한미 통화스와프의 수혜자가 되는 우리나라가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마침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오는 19일 한국을 방문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날 예정인 만큼 이를 ‘실마리’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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