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 탄생 : 1948.5.10제헌의원 선거
주권자 탄생 : 1948.5.10제헌의원 선거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 승인 2019.0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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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제주 4.3과 여순사건의 발단과 전개 과정 모르고 야만적인 진압과 장렬한 저항만 기억

-국민이 주권자인 자유민주공화 남한, 시작 미약했지만 창대해져. 체체의 유전자 차이의 결과

-자유민주공화체제의 유전자를 만들어낸 5.10총선거의 역사적 의의를 우리는 너무 과소평가

지난 5월 10일 오후 4시, 서울 국회 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제헌의원선거 71주년 기념 토론회’를 개최했다. 주제는 ‘1948년 5월10일 총선거와 주권자의 탄생’이었다.

국민을 실질적인 주권자로 만든 선거제도와 헌법정신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이 위대한 헌법정신과 선거제도가 시간축을 따라 굴러가면서 독재와 독점, 부정과 부패, 사기와 협잡, 빈곤과 전근대적 유제 등 온갖 악덕을 일소해 갔다. 그야말로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중이 창대하게 되었다.

반면, 항일유격대와 프롤레타리아·엘리트 독재당과 그 당이 지명하는 후보 찬반투표로 출발한 북한은 완전히 정반대로 되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온갖 악덕이 판치는 지옥이 되었다. 체제의 유전자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는 자유민주공화체제의 유전자를 만들어낸 5.10 총선거의 역사적 의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1948년 제주 4.3은 5.10 총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폭동으로 시작되어, 나중에 진압군과 청년단에 의한 과잉, 무차별 진압이라는 참극을 초래하였다. 그해 10월 여수 주둔 14연대 반란사건도 제주 4.3이 계기가 되었다. 38선이 뚫려 북한이 진격해 오니, 제주로 진압하러 가지 말고 남쪽에서 내응하자는 취지의 구호가 핵심 구호 중의 하나였다.

북한은 1946년 2월에 사실상의 북한 단독 정부를 수립해 놓고,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집요한 공작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터진 것이 제주 4.3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지극히 편향된 눈으로 보던 사관이 지배적이었던 1980년대 초중반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 그 중에 나 같은 열혈 운동권은 지리산과 한라산이 마음의 고향이었다. 지리산과 한라산에서 싸우다 스러져 간 빨치산을 찬미하던 비장한 노래를 얼마나 불렀던지! 제주 4.3과 여순사건의 발단과 전개 과정을 알지 못하고, 야만적인 진압과 장렬한 저항만 기억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을 공유하던 사람들 중에서 역사학계에 투신한 선수들은 5.10선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흠결을 찾아내는 작업에 매진하였다. 그러다 보니 5.10선거 관련 논문들은 대부분 이 흠결을 파헤친 것이라는 것을 이번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알았다.

해방공간에서 우익과 공권력의 잔악무도한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좌익과 북한의 집요한 방해공작과 야만적 폭력도 비호해서는 안된다. 이 폭력의 발단과 전개 과정과 귀결 전체를 균형적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또 하나,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잔악무도한 폭력(빨갱이 사냥 등)을 이승만 정권에게 독박을 씌워서도 안된다. 단적으로 당시 이런 폭력을 행사한 기관과 사람들은 지금의 한국당과 민주당의 정치적 조상들이다. 이 조상들은 4.3과 여순과 6.25에 관한 한 강고한 동맹체제를 형성했다.

위정척사, 친일, 친청, 친러 등 오욕의 역사도, 해방공간의 학살 등 야만의 역사도 우익 내지 이승만과 박정희만의 책임이 아니요, 좌익 내지 김일성의 책임만도 아니다. 모든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참혹한 역사를 단순무식하게 재단하면 안된다는 얘기다. 관용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일보에 쓴 이종필의 단순무식하고 견강부회식 역사 인식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종필은 이렇게 썼다.

“무려 3만여 명의 희생자를 낸 제주 4ㆍ3 사건은 이승만이 자기 권력을 다지기 위해 벌인 자기 나름의 인적 청산이었다. 흔히 우리는 해방 이후 인적 청산을 제대로 못했다고 말하지만, 친일파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들은 아주 확실하게 독립지사와 민족주의자들을 청산했다. 이 과정에서 “빨갱이”는 대단히 유력한 수단이었다.“

서두에 언급한 ‘1948년 5월10일 총선거와 주권자의 탄생’이라는 세미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몇권 보고 피꺼솟하고, 이후 역사 공부를 별로 안 한 이종필 같은 류(그 칼럼에 공감한 사람들)가 들었으면 참 좋을 것 같은 세미나다. 또 지리산과 한라산 빨치산 투쟁을 미화한 노래를 비장하게 부르며 ‘문재인 식 역사 청산 내지 역사 이용’에 환호하는 x86세대와 그에 감동하고 감화받은 중년과 청년들이 들어도 참 좋았을 것이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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