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이민진의 장편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 재일교포 4대에 걸친 수난사·생존기를 그린 작품으로, 애플TV+ 동명의 드라마(8부작)로 제작돼 또 한번 화제를 불렀다. 2부 제작도 공식화됐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 한국판의 첫 문장이었다. 원문은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다. 판권 문제로 절판된 지 3개월 만인 27일 발간되는 개정판에선 이 첫 문장 번역이 이렇게 바뀐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파친코> 첫 문장은 책 전체의 ‘함축’이자 주제 ‘선언’이다. 국내 판권이 ‘문학사상’에서 ‘인플루엔셜’로 넘어가면서 통째로 다시 번역됐다. 신승미 번역의 개정판은 이전 번역본과 상당히 다르다. "의역을 줄여 최대한 원문을 살렸으며, ‘첫 문장의 무게’를 고심해 번역했다"고 한다. "두 번역 모두 존중한다"는 게 이민진 작가 입장이다.

13일 국내 언론과 통화한 이 작가는 "난 첫 문장을 소설의 주제문(thesis sentence) 삼는다"고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소설가가 쓰지 않는 방식"인데, "파친코 첫 문장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역사에 잘 안 드러나지만 진정 역사를 만드는 게 그들임을 강조한 것이다."

"‘fail’은 ‘disappoint’ ‘let us down’(실망시키다)에 가깝긴 하지만 두 번역가의 선택을 존중한다." 아울러 번역가에게 감사와 지지를 표했다. "번역은 또 하나의 예술 형식, 번역가란 문학계의 천사다. 충분한 보수도 인정도 못 받으며 이야기를 세계인들이 이해하도록 해준다. 그들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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