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
이춘근

7월 8일 자민당을 위해 유세 중이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어이없는 암살을 당했다. 아베의 죽음에 대한 한국 언론들과 일부 식자들의 반응은 지극히 감정적이었다. 아베는 일본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 한 못된 인물인데 마치 ‘정의로운 사나이’에 의해 암살을 당하게 되어 ‘기분이 좋다’ 라는 투의 황당무개한 해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암살범이 해상 자위대의 장교 출신이었다는 사실까지 인용하며 엉터리 해설을 하는 이도 있었다. 암살범이 아베의 군국주의를 경계한 것이라는 정반대의 언급이었다.

나라를 위해 전쟁터로 달려 나가겠다는 국민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13%에 불과할 정도로 평화주의에 취한 일본이다. 해상 자위대 장교 출신 암살범이 아베를 죽인 이유는 아베의 군국주의가 심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베가 너무 평화주의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정부는 아베의 암살 사건에 대해 합리적·전략적으로 대응했다. 대통령이 아베의 분향소를 방문, 유족과 일본 국민을 위로했고 아베의 장례식에 고위사절단을 파견한다는 것은 국제정치적으로 올바른 일이다. 세계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아베의 사망을 애도했다. 한국의 언론과 국민, 그리고 일부 식자들이감정적으로 말하듯 아베는 일본 군국주의자이기보다는 인도-태평양이라는 21세기적 개념을 만든 국제주의자다.

아베 사망 당시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필자는 미국의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현직 국가 정상도 아닌 전직 관리의 죽음에 대해 그 정도로 애도를 표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미국은 아베를 추모하기 위해 8-10일 3일 동안 조기를 게양했고 군함들도 같은 기간 동안 조기를 달았다. 미국의 조기는 깃발을 게양대의 중간에 거는 것이다. 플로리다 주의 케네디 우주센터에도, 조지아주의 아틀란타 공항에도 성조기는 깃봉의 중간에 걸려 있었다.

미국의 중도 좌파적 국제정치 잡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등은 비록 아베는 죽었지만 ‘아베의 유산(Legacy)은 그가 죽은 후에도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해설 기사를 게재했다. 아베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속성을 오랫동안 의심해 온 미국인들에게 일본이 진짜 미국의 친구요 동맹이 될 수 있음을 인식시켜준 인물이다. 아베는 미국인들이 써준, 전쟁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평화 헌법 9조를 개헌하려고 노력했다.

미국인들은 이제 일본의 군사력을 ‘선한 힘’(Force For Good)으로 보고 있고 일본과 함께 전쟁도 할 수 있다고 느낀다. "일본의 도움이 없으면 한국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까지 말하는 미국이다. 아베의 암살은 헌법 개정을 가능케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베의 정당에 대승리를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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