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역사는 초기부터 '타자들' 사이를 헤쳐나가는 과정"

타타르와 싸우는 자포로제 코자크. /요제프 브란트 그림

"우크라이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국가(國歌) 첫 소절이다. 첫 소절부터 이렇게 비장한 國歌는 드물다. 국가정체성 수호에 대한 단호한 의지가 읽힌다. 국민의식과 연대감을 고취시키는 게 國歌의 존재 이유이기에, 대부분 國歌는 ‘유구한’ ‘영광스런’ 과거·현재·미래를 말한다. 왕실이나 왕·여왕의 안녕을 기원하는 가사인 경우도 있지만, 그 역시 국민통합의 상징이로 國歌에 등장한 것이다.

어떤 역사를 겪었길래 이런 國歌를 가지게 됐을까. 한길사가 펴낸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The Gates of Europe)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최근까지의 우크라이나 역사를 조명한다. 650쪽에 달하는 방대한 기술이다.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국과의 갈등도 세밀하게 다뤘다. 저자 세르히 플로히(Serhii Plokhy, 65세)는 우크라이나 드니프 태생이다. 30세 이후 고국을 떠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 학계에 자리잡았다. 현재 하버드대 역사학과 석좌교수이자 동대학 우크라이나연구소 소장이다. 동유럽 지성사·문화사, 국제사 분야의 많은 저서를 냈다. 특히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는 최근 국제정세와 관련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옮긴이 허승철(63)은 2006~2008년 우크라이나 주재 한국대사(조지아·몰도바 겸임)를 역임한 외교관 출신의 대학교수다(고려대 노어노문학과). 미국 브라운대에서 박사학위(슬라브어학)를 받았으며 다수의 관련서를 저술했다.

우크라이나는 별명이 ‘유럽의 빵 바구니’일 만큼 풍요로운 지역이다. 자연히 이 땅을 탐내는 부족·민족이 많았다. 이란계 스키타이인·하자르족·바이킹·슬라브족·몽골인·튀르크인 등 다양한 민족들이 이 지역을 다스리며 다양한 문화가 싹텄다. 저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문화는 항상 다른 문화와 공유된 공간에 존재했고, 초기부터 ‘타자들’(Others) 사이를 헤쳐나가는 과정이었다."

우크라이나 땅에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사람들의 조상인 동슬라브족이 곳곳에 정착했고, 8세기 후반부터 ‘루스 바이킹’이라 불리는 노르만인들이 키이우를 점령해 나라의 토대가 마련됐다(키이우 공국). 키이우 공국은 그리스 정교를 받아들이고 문자를 확립하면서 발전했으나, 권력투쟁과 외부 침입으로 쇠락하다 13세기 중반 몽골제국 지배 하에 들어간다. 모스크바 공국과 달리 끝까지 저항한 결과였다.

몽골이 물러간 후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통합되는가 하면, 힘을 키운 모스크바 공국 아래 놓이기도 했다. 16~17세기 크림반도 노예시장에 끌려온 우크라이나인·러시아인이 150만~3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말(언어)’을 뜻하는 ‘슬라보’, 거기서 유래한 ‘슬라브’가 영어 슬레이브(slave 노예)의 어원이 된 배경이다.

이윽고 경비병·자유인·약탈자를 의미하는 코자크(코사크)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주변 강국들과 합종연횡하며 독립을 꿈꿨으나 현실은 험난했다. 강대국에 이용만 당하다 제국으로 도약한 러시아에 18세기무렵 병합된 이후 소련이 붕괴하기까지 그 자장 속에 있었다. 러시아의 동화정책으로 19세기 후반 이래 우크라이나어 출판이나 연극·노래 공연도 금지된 상태였다.

우크라이나는 전제(專制)적인 러시아에 비해 자유롭고 평등을 추구하는 기풍이 강했다. 민족·언어적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벗어나려 한 이유다. 서방의 일원이 되는 것, 대안은 그것뿐이었다. 19세기 사상가 미하일로 드라호마노프부터 1920년대 민족 공산주의자 미콜라 흐빌료비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 지식인들을 사로잡은 생각이었다.

세르히 플로히 하버드대 석좌교수
세르히 플로히 하버드대 석좌교수

드디어 기회가 왔다. 소련 해체 후 독립국이 된 것이다. 당시 세계 3위의 핵 보유국이던 우크라이나는 1994년 12월 핵무기 포기를 골자로 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미국·영국·러시아와 체결했다. 서방에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수 세기 지속된 러시아 영향을 벗어나기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2012년 대통령직 복귀 전 블라디미르 푸틴은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 재통합을 자신의 최대 과제로 내세운다. 우크라이나 없이 완결될 수 없는 과제였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2014년 크림반도 병합,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렀다. 저자는 다민족·다문화를 자랑하던 우크라이나지만 이번 전쟁이 민족주의 강화를 부를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이번 위기의 해결에 "우크라이나 미래뿐 아니라 러시아와 유럽연합 관계, 유럽 전체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