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남 이승만 57주기에 부쳐

김일주
김일주

7월 19일은 이승만 건국대통령 서거 57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승만의 독립운동 전진기지는 하와이였다. 독립운동 전략을 세운 곳도, 독립운동을 실행에 옮긴 곳도 하와이였으며 삶을 마감한 곳도 하와이였다.

지난 6월 25일 하와이 태평양국립기념묘지(펀치볼 국립묘지)에서 6·25전쟁 72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행사에는 미국 인도태평양군(USINDOPACOM) 사령관 아퀴리노(J.C. Aquilino) 대장이 참석했으며, 한국에서도 전 국무총리와 예비역 대장 등 많은 인사가 자리했다.

펀치볼 기념행사 전날에 있었던 만찬도 주목을 받았다. 카이저(H.J.Kaiser)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리버티 전함과 빅토리 전함을 생산해서 히틀러 군대에 치명타를 안긴 하와이 출신 군수업자다. 미국이 자랑하는 애국자 카이저의 저택을 매입한 사람이 바로 하와이 교포 애니 챈(Annie Chan) 회장이다. 그는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라는 한미 간의 동반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그 저택을 매입했다고 한다. 카이저가 살던 집에서 미국과 한국의 유명인사들이 모여 만찬을 하고 이승만의 건국정신과 6·25를 되새겼다는 사실은 흐뭇하다.

우남(雩南, 이승만의 아호)의 서거일을 맞아 갖게 되는 원초적 질문이 하나 있다. 우남의 역사가 왜 흐릿한가. 그의 독재와 3·15 부정선거 때문인가. 6·25 때 전략적 시행착오로 인한 수많은 인명 피해 때문인가. 집권 때 일어났던 부하들의 부정부패 때문인가. 평가 명분으로서의 이런 질문들은 예리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모택동은 문화혁명을 통해 5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 셀 수 없는 기행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도 그의 초상화는 지금 천안문 광장에 높이 걸려있다. 미국의 워싱턴이나 제퍼슨도 오늘날 사회제도의 관점이나 윤리의식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낙제점에 해당할 것이다. 우남에 대한 평가는 역사나 가치의 관점이 아닌 이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전모 파악이 가능하다. 상해임시정부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이질적 이념과 사상을 소유했던 두 세력 간의 이전투구라는 분석에 답이 있다.

상해 임정은 시작부터 이질적인 이념을 소유한 두 집단 간의 갈등 속에서 시작됐다. 자유·민주·공화 세력으로 분류되는 이승만·김구·안창호 등이 있었는가 하면, 무장투쟁 세력들의 비호를 받았던 이동휘·박용만·여운형 등의 사회공산주의 세력이 있었고, 나중에는 홍범도까지 여기에 가세한다. 1917년 3월에 일어났던 레닌의 공산주의 혁명이 집도 절도 없이 떠돌며 살고 있었던 1919년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머릿속을 이렇게 둘로 갈라놓은 것이다. 콩가루 같았던 상해 임정 내분 때문에 우남은 6개월을 못 버티고 미국으로 돌아가 버린다.

현재 대한민국은 사상전을 치르고 있다. 지난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주사파 세력들은 마음놓고 자신들의 세력을 사회 각종 영역에 침투시켜 최대치로 활성화했다. 휘하의 단위조직 세포들은 자신들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백여 년 전의 이념 싸움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자 시장경제주의자 이승만의 평가가 세월이 흘렀어도 설 자리가 없는 이유는, 사상전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애국 세력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북한의 세습 권력을 추종하는 세력들과 승부 보는 것을 머뭇거리면 국가의 생존이 어려워질지 모른다. 전두환 군부 시절에도 ‘좋은 것이 좋다’라는 전략으로 극좌 세력을 회유한 적이 있다. 결론은 우파 세력의 완패였다. 이 승부처에서 이승만의 건국정신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세력’이 최선봉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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