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강세(PG). /연합
달러 강세(PG). /연합

달러가치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오르면서 세계 경제에도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 국제무역의 대부분이 달러로 이루어지는 만큼 강(强)달러는 각국 경제를 압박하고, 이에 따라 경기둔화 공포가 확산되면 달러 수요가 늘어 또다시 달러 강세를 이끌어내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고통이 커지는 셈인데, 강달러 랠리는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물가 급등을 잡기 위해 성장이 훼손되더라도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리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각국은 인플레이션과 강달러라는 이중고를 겪게 되고, 특히 신흥국은 ‘도미노 디폴트’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세계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는 이달 들어 지난 15일까지 3.1% 오르며 강달러 기조를 이어갔다. 달러인덱스는 올들어서만 12.5% 상승했다.

반면 다른 통화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주 유로화 가치는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며 20년 만에 ‘1유로=1달러’라는 패리티가 붕괴됐다. 패리티는 각국 통화 간 가치의 등가(等價)를 말한다. 미국 월가에서는 유로화 가치가 95센트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엔화는 달러에 대해 20세기 말 이후 최저치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서곡에 불과하다는 관측도 있다. 미 연준이 오는 26~27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최소 0.75%포인트 올리면 미국과 유럽·일본 등의 기준금리 격차는 더 벌어지고, 이는 달러 강세 기조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에 강달러는 ‘양날의 검’이다. 국내적으로는 수입 제품에 대한 구매력을 높여주지만 미국 내 수출기업은 이익 감소의 압박을 받는다. 달러 강세로 올해 1분기 마이크로소프트(MS)의 매출이 3억 달러 줄어든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타 국가들에게 강달러는 위협으로 다가온다. 원유와 구리 등 원자재 가격이 달러로 표시되는 만큼 달러 강세는 이들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의미한다. 달러가치가 오르면 각국 달러표시 부채의 상환부담도 덩달아 커진다. 특히 강달러는 각국 증시에 악재다. 자본 이탈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증시에서 710억 달러(약 93조5000억원)의 해외 투자금이 빠져나가면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아시아지수가 20% 하락했다. 이 가운데 한국과 대만 등 기술주 비중이 큰 국가의 증시는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올해 양국 증시에서 해외 투자자들의 순매도 금액은 500억 달러(약 65조8000억원)에 달한다.

미 연준의 고강도 통화긴축은 특히 신흥국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 심화로 달러표시 국채의 상환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신흥국 20곳을 조사한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달러표시 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 평균 24.6%로 2019년 말보다 1.1%포인트 높아졌다.

달러 강세에 따른 해외 투자금 유출도 문제다. JP모건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달까지 신흥국 채권시장에서 유출된 자금은 520억 달러(약 69조원)에 달한다. 통화가치 하락으로 수입물가가 치솟으면서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가중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신흥국의 30%, 저소득국의 60%가 부채상환 위기에 빠졌거나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월가는 글로벌 경기침체 역시 달러 강세를 지속시킬 요인으로 보고 있다. 특히 높은 물가와 강달러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신흥국에서는 연쇄적인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에 이어 경제의 펀더멘털이 취약한 엘살바도르·가나·이집트·튀니지·파키스탄 등이 디폴트 위기에 빠질 국가로 거론되고 있다.

과거 강달러 시절에는 미 연준이 통화긴축을 멈추면 달러 강세도 중단됐다. 하지만 지금은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미 연준이 긴축적 통화정책을 되돌릴 여지가 적다. 신흥국의 디폴트 시계가 더욱 빠르게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