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세아그룹 문화공간 개관전 초대 日 작가 쿠사마 야요이

강박·환각 극복하려 작업 몰두...많은 사람들에게 힐링 메시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만든 회화·조각·판화 40여 점 선보여

 
일본 세토나이카이(瀨內海)의 섬(直島)에 설치된 쿠사마 야요이 작품 ‘노란호박’. 오랜 지병(환각)으로 인한 ‘점’과 농작물 종자업자 부모 밑에서 친숙해진 ‘호박’이 평생 작업소재였다.
쿠사마 야요이의 컨셉으로 관람객들이 ‘점’을 추가하며 함께 만드는 설치 미술 ‘소멸의 방’.
 

15일 개막한 글로벌세아그룹의 문화공간 S2A 개관전 ‘쿠사마 야요이: 영원한 여정’이 열리고 있다(9월 14일까지). 전시작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93)의 197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회화·조각·판화 40여 점이다. 이번 전시는 김웅기(71) 글로벌세아그룹 회장과 국내 개인 컬렉터 10여 명의 소장품으로 이뤄졌다. 보험가만 200억 원인 100호 크기 ‘호박’, 작년 11월 서울옥션에서 국내 시장 최고 낙찰가(54억5000만 원)를 기록한 50호 크기의 1981년작 ‘호박’도 나왔다. 그 해 경매시장에서 쿠사마 작품은 138억 원 어치나 낙찰됐다. 판화작품이 특히 젊은층에게도 인기다.

호박은 쿠사마 작가가 농작물 종자업자 부모 슬하에서 어려서부터 친숙했던 사물로, 동화적 우화적 상징성을 지닌다. 작품에 등장하는 패턴(점 무늬)은 지병인 정신질환(환각·강박·편집증)과 관계가 있다. "난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년시절 시작된 장애·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예술을 추구할 뿐이다." 쿠사마는 "동일한 영상이 자꾸 밀려오는 공포"에 평생 시달리며 강박·환각을 치유하기 위해 작업에 몰두했다.

1948년 일본 교토(京都)시립예술학교에 입학해 1952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57~1972년 뉴욕에서 아방가르드 예술가로 활동하며 추상표현주의 작가들과 교류했다. 1977년 귀국, 48세부터 지금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병원 내 ‘쿠사마 스튜디오’를 만들어 작품활동을 계속해왔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에 초대 대표로 참여해 수상했으며, 2003년 프랑스 예술 문화 훈장을 받았다. 그 외, 시드니 비엔날레, 타이페이 비엔날레 등 다수의 대형 국제전시를 비롯해 단체적 개인전을 각각 100여 회 개최했다.

쿠사마는 자신을 "우주의 길잃은 점", "점으로 시작해 점으로 소멸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릴 때 집안의 빨간 꽃무늬 식탁보를 본 후 그 잔상 때문에 고통받게 된다. 물방울(점) 무늬로 변해 자신을 덮쳐 오는 잔상들, 이것이 훗날 미술 작업의 소재가 됐다. 피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승화시켜 나간 셈이다. 나가노의 부유한 집 4남매 중 막내로 자란 쿠사마지만, 10대 후반 태평양전쟁 말기 군수공장 낙하산 재봉일을 해야 했다. 시대상황, 아버지의 가출, 어머니의 가혹한 훈육 등으로 정신질환이 깊어지는 가운데, ‘병’인줄 인지하지 못했고 당연히 치료도 못 받았다.

환각을 소재로 작업하던 쿠사마가 자기 증상이 정신질환임을 알게 된 것은 1952년 23세때 전시에서 만난 니시마루 시호 박사(나가노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를 통해서다. 니시마루 박사의 지속적 관심 속에 그녀는 196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초청받지 못한 작가’로서 전시장 앞 잔디밭에 1500여 개의 물방울 무늬 오브제를 늘어놓았다. 작가 사인을 써넣은 ‘개당 2달러’ 물방울들이 관람객의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정식 초청된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망(網 Net)·물방울(dot) 무늬와 다양한 시리즈 등, 쿠사마의 작품세계와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힐링의 메시지를 준다. 전시회장에서 관람객 참여 작품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전시회를 보고 나오는 길 마지막 방에서 관람객이 직접 동그란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이는 참여 작품 역시 흥미롭고 철학적인 체험이다.

쿠사마 야요이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책(2018년 1월 출간). 스즈키 사라(지음) 엘렌 와인스타인(그림) 최순희(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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