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웨어 스페셜'.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연합
영화 '노웨어 스페셜'.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연합

몸에 상처와 문신이 가득한 건장한 30대 남자가 있다. 묵묵히 유리창을 닦는 그의 눈에 유리창 건너 안온해 보이는 타인의 생활 공간이 들어온다.

머리도, 눈도,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볼도 동글동글한 네 살 아이가 있다. 크게 울지도 떼를 쓰지도 않는 아이의 눈에 하루하루 눈에 띄게 초췌해져만 가는 아빠의 모습이 들어온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존(제임스 노턴 분)은 소파에 누워 쉬는 시간이 늘었고, 일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들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에게 ‘죽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려주고,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는 일이 남았다.

자신이 해줄 수 없었던 것을 해줄 수 있는 부모, 사랑이 가득한 보통의 가정을 찾기 위해 존은 마이클의 손을 잡고 입양을 지원한 가정을 방문한다.

영화 ‘노웨어 스페셜’은 ‘스틸 라이프’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4관왕을 차지하며 주목받았던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이 7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구청 공무원의 이야기를 따라갔던 ‘스틸 라이프’에 이어 죽음과 이별을 앞둔 젊은 아빠와 어린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생과 사를 돌아보게 만든다.

한껏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는 밋밋할 정도로 차분하고 단조롭게 존과 마이클 부자의 일상을 따라간다.

분위기를 고양하는 배경 음악도 없이, 또 다른 설정과 연출을 더하는 일도 없이, 그저 두 사람의 얼굴을 화면 가득 담는 것만으로도, 손을 잡고 걷는 두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어지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좋은 부모, 좋은 가정을 찾는 일도 처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다양한 가족들을 만날수록 무엇이 좋은 부모, 좋은 가정인지, 무엇이 마이클을 위한 선택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너무 일찍 알려주고 싶지 않아 미루고 미루지만, 마이클이 공원에서 죽은 딱정벌레를 발견하자 애써 감정을 누르고 차분하게 설명한다.

이해를 한 건지 아닌 건지 마이클은 금세 아이스크림을 찾고 존은 웃어넘기지만, 입양 지원 가정에서 대화를 나누다 마이클이 ‘아줌마는 언제 죽어요?’라고 물을 때는 모두가 가슴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부족한 아빠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던 존은 갓 난 마이클을 두고 떠난 엄마의 물건과 사진, 마이클이 자라면서 읽게 될 여러 통의 편지를 준비하고, 마이클은 자신의 방식으로 아빠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파솔리니 감독은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가 죽기 전 갓 난 아들을 위해 새 가족을 찾는다’는 기사를 읽고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과 제작을 맡았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첫째 메그와 결혼한 존 브룩을 연기했던 제임스 노턴이 존의 절제된 슬픔과 고통을 인상적으로 담아냈다.

영화의 배경인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지역에서 오디션으로 캐스팅된 아역 다니엘 라몬트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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