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희
김인희

고(故) 이예람 중사가 성폭력 피해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20전투비행단에서 19일 다른 여군 간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또다른 여군 간부 사망자라고 하니 이 역시 성폭력과 연관됐으리라는 의심이 드는 것은 한두사람이 아닐것이다.

이미 이 중사 사건으로 인해 특검까지 가동되며 해당 부대 전체가 발칵 뒤집혔을텐데 왜 또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해당 부대가 유별나서 그런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군(軍) 당국은 아무래도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싶을 것이다. 해당 부대에서만 유별나게 그런 사고가 발생했고, 군의 전체적인 기강과 지휘체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전 국민 중 무려 30% 이상이 군필자인 이 대한민국에서 그런 변명이 먹힐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을 바보로 취급하는 ‘군기빠진’ 모습이다.

애초에 군대라는 조직은 규정대로만 운영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게끔 설계돼있다. 군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FM대로 한다’는 말은 ‘야전교범(Field Manual)대로 한다’는 뜻으로 ‘규정대로 한다’는 말이다.

군인복무규정에는 아주 세세한 것까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규정돼있다. 동료간 성희롱·성폭력은 당연히 엄격히 금지되며, 군 동료들과 금전적으로 깨끗한 관계를 유지할 것, 심지어는 상급자 하급자를 막론하고 동료의 부정행위를 절대 묵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까지 규정돼있다.

이 규정대로만 군이 운영된다면 군에서는 사고나 비위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 억울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모든 문제는 규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 특히 지휘관들의 지휘권 재량이 과도하게 인정되다 보니 지휘관이 규정에 어긋나는 명령을 내리더라도 이를 거부하기가 불가능하다.

지휘관 역시 군인의 한 사람으로서 군 규정을 준수할 의무가 있지만 지휘관의 규정 위반은 더 상급 지휘관이 아니고서는 지적하기조차 어렵다. 그렇기에 군에서는 어떤 사고가 발생하면 일단 숨기기에 급급하다. ‘걸리지만 않으면’ 없던 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고가 발생하면 상급 부대 지휘관에게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위반된다. 지휘관 본인의 진급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안중에도 없다. 이래저래 피해자만 2차 가해에 노출되고 가해자는 사고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드려는 지휘관의 노력에 힘입어 정말로 지은 죄가 없는 양 당당하게 행세하고 다닌다. 결국 가해자와 지휘관은 공범이 돼서 사건을 은폐하는 데 집중한다. 지휘관 본인이 가해자일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관행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상급자를 우대하고 하급자를 멸시하는 군 풍조에 있다. ‘계급이 깡패’라는 말이 있듯이 군에서는 모든 것이 상급자의 편의를 위해서 움직인다. 그런데 군에서의 사건 사고는 대부분 상급자가 가해자다. ‘상급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피해자’ 보호가 등한시되는 것이 군의 현실이다. 이런 군이 어떻게 정상적인 조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중세시대 이전 지구상 최강의 군대는 로마군이었다. 로마군은 규정과 규율을 중요시하고 그것을 철저히 준수하는 군대였다. ‘군기’는 바로 ‘군인기강’이다. 군인기강은 규정과 규율을 준수하는 데서 시작한다.

규정과 규율을 무시하는 군대, 바로 ‘군기빠진’ 우리 군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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