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노조의 불법적 선박 점거 농성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엄정 대응을 공언했다. "불법을 지렛대 삼아 협상하는 관행을 극복하겠다"고 역설했다.

이 장관의 용기와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36년간 노동운동을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장관은 2009년 용산참사와 쌍용차 사태에서 보듯 공권력 행사에 따르는 위험이 얼마나 큰지 잘 알 것이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귤이 탱자가 되는’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전형이다. 노동조합이 사회적 약자의 무기(귤)가 아니라, 사회적 강자의 무기(탱자)가 된다. 즉 약탈(지대 추구)의 수단이다. 우리 헌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한 것은 노조가 단체교섭을 통해 "직무에 따른 기업 횡단적(cross sectional) 근로조건의 표준"을 형성하여 교섭력 약한 근로자의 자유와 권익 증진에 이바지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크고 힘센 노조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 근로조건은 기업의 지불능력과 노조의 교섭력에 따른 것이고, 사람값(근로조건)은 ‘개인의 직무성과=생산성’이 아니라 ‘소속(직장)’에 따라 천양지차가 난다. 따라서 대우조선 같은 좋은 직장은 가능하면 직접 고용을 늘리려 하지 않고, 더 많은 일을 외주로 주려 한다. 크고 힘센 원청노조가 "기업횡단적인 표준"을 추구하지 않으니, 원-하청 간 근로조건 격차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원청 근로자가 받아 안아야 할 위험과 부담이 오롯이 하청에 전가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됐다. 급기야 목숨을 건 불법폭력 투쟁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요컨대 모든 근로자를 약자로 보고, 노조를 약자의 무기로 간주하는 노동관계법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시켰다. 회사는 생존전략 차원에서 외주를 늘리고 단가 인하를 압박하는 악순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구조적 원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투쟁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과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상생의 노사관계를 만들 능력과 책임이 있다. 불법에는 단호하게, 불법의 원인과 구조에는 더 단호하게 맞설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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