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의 비명(碑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 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 같이 태양 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함형수(1914~1946)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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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묘비명은 아일랜드 극작가 버나드 쇼일 것이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오래 살다보면 이런 일(죽음) 생긴다는 걸 나는 알았지.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우물쭈물 살다가 내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 라는 오역이 더 유명하다. 묘비명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애쓴 나머지 이런 오역 아닌 오역이 생겼을 터이다.

요즘에는 비문이 유행인 듯하다. 크기도 크기려니와 별 뜻도 아닌 문장을 돌에다 새긴다. 시비(詩碑)도 그렇고 기념비도 그렇고 심지어 노래비도 그렇다. 어느 지방에선가는 인기를 끌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행가 가사를 돌에 새겼다. 가히 비문 전성시대라고나 할까. 이런 반면에 아무런 글자도 새겨져 있지 않은 백비(白碑)도 있다. 조선시대 문인이자 청백리 박수량의 후손은 고인에 누가 될까봐 비석에 아무런 글자도 새기기 않았다.

‘해바라기의 비명’은 시인 자신이 원하는 비명이다. 후손에게 비석과 비문 대신 해바라기를 심어달라고 부탁이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 돌을 세우지 말고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줄기)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이 대목에서 해바라기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오른다. 고흐는 화가로 살기로 작정한 후부터 단 한 순간도 다른 것에 한눈팔지 않았다. 그의 해바라기 시리즈는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걸작이다. 모가지가 잘린 해바라기는 태양처럼 활활 타오른다. 해바라기는 죽음을 초월하는 삶에의 강렬한 의지와 열정을 상징한다. 거기다 ‘끝없는 보리밭’은 생명력이 넘치는 서정적 풍경이다. 죽어서 해바라기 사이로 펼쳐진 끝없는 보리밭을 보는 것은 차가운 비문에 견줄 바 아니다.

함형수는 서정주, 김동리와 함께 ‘시인부락’ 동인 활동을 하며 시를 쓰다가 해방 직후 33세로 빈센트 반 고흐처럼 요절하였다. 함형수는 빈센트의 삶과 그림에서 동병상련 감정을 느꼈던 게 분명하다. 시적 화자는 해바라기 화가 고흐다. 시행이 점차 길어지고 각 행의 말미가 단호한 명령형으로 맺는 것은, 비록 육체는 사라졌지만 예술혼은 해마다 피어나는 해바라기처럼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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