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뀝니다”
“보수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뀝니다”
  • 강지연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9.06.1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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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 시절까지 뭘 기대하든 그 이상이던 박근혜, 놀라운 리더십으로 새누리당 창당

–대통령 당선되자마자 변화. 안티꼰대 그룹 뿔뿔이 흩어졌고 돌이킬 수 없는 꼰대의 길 걸어

–야간 주간화, 휴일 평일화, 가정 초토화, 라면 상식화… 김기춘 등 3040년생 꼰대들이 망쳐

“3040이 박근혜를 망쳤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흥분하지 마시라. 여기서 3040은 30대와 40대를 뜻하는 게 아니다. 1930년대 생과 1940년대 생을 말한다. 현재 나이 70대, 80대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김기춘 실장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자.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팔순 노인을 2년 가까이 감옥에 가둔 것은 비정상적이고 잔혹한 정치보복이다. 그러나 어느 인권단체에서도 이 부분을 문제삼지 않는다.

김기춘 실장은 게이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고, 귀여운 동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하나의 ‘적폐노인’에 불과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3년 전까지 그는 보수 진영의 핵심장수였다. 그가 제 몫을 잘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이미 사회적 생명이 끊어진 그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시체에 매질하는 것과 같은 치졸한 짓이다. 같은 돌팔매질이라도 우리 편에서 날아온 돌이 더 아픈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를 거론하는 이유는 그와 3040그룹이 당에 드리운 넓고 깊은 그늘 때문이다. 나는 그를 둘러싼 의혹과 혐의의 실체적 진실을 알지 못한다. 다만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그가 말했다는 노선인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 라면의 상식화”가 가져온 충격에 대해서만 얘기하려 한다. 그 때 그 씁쓸하고 참담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호르헤 수사를 보는 기분이었다.

◇김기춘과 호르헤 수사

김기춘이 말한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 라면의 상식화.”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호르헤 수사를 보는 기분이었다. 호르헤 수사는 웃음을 허용해야 하느냐는 시덥잖은 문제로 주인공 윌리엄 수사와 사사건건 대립하다가 대도서관을 홀랑 태워먹은 문제적 노인네다. 시덥잖은 모토를 시행하는 데 골몰하다가 보수진영을 홀랑 태워먹은 김기춘 실장의 이미지와 딱맞는 캐릭터다.

청와대 행정관 근무경험이 있는 지인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김기춘 실장의 모토를 충실히 구현한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일요일 밤 12시에 전화를 걸어도 항상 사무실에 있었다.

모임이 있을 때도 근처 김치찌개 집에서 조촐하게 한 끼 때우고 서둘러 사무실로 복귀하곤 했다. 그들은 그렇게 가정을 버린 채 야근과 라면으로 이루어진 철옹성을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쌓아왔다.

콘크리트와 같은 박근혜 정부에 파열음을 일으킨 첫 번째 사건이 ‘십상시 파동’이다. 십상시의 존재 여부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다. 당시 나돌았던 십상시 명단도 누구는 들어가고, 누구는 빠지는 등 들쑥날쑥하다.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명단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던 한 인물은 ‘쪽팔리게 나를 왜 하필 내시에 비유하냐’며 펄쩍 뛴다. 그러나 내 판단으론 최소한 대선 때까지 그 비슷한 보좌진 그룹이 실재했다.

나는 이 그룹의 정체성을 ‘안티꼰대’ 그룹으로 규정한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기 직전까지 그들은 활발히 활동했다. 그들은 선거사무소를 슬림화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 선거사무실은 할 일 없는 정치건달들이 북적거리는 사랑방이 아니었다. 명실상부한 일하는 사무실이었다. 탑 디자이너를 삼고초려해서 홍보물 제작을 맡겼다. 지금 자유한국당 홍보물은 ‘안구테러’에 가깝지만 당시 홍보물은 삼성 광고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 빼어난 미감을 자랑했다.

◇박근혜의 놀라운 리더십과 감각

비대위원장 시절부터 대통령 후보 시절까지 박근혜는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놀라운 리더십으로 새누리당 창당을 이끌었다. 당시 나는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을 버리는 것에 대해 극렬하게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 보건대 피치 못할 선택이었음을 인정한다.

힘겨웠던 시절 비대위를 구성한 감각도 놀라웠다. ‘어디서 이렇게 괜찮은 사람들을 끌어모은 거지?’ 싶을 정도로 안정과 혁신의 균형감을 보여주었다.

비대위 시절 당시 나는 당의 홍보팀장 직책을 맡고 있었다. 비대위가 상징하는 당의 변화와 혁신을 담기 위해 ‘보수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뀝니다’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주변에서 오랜만에 괜찮은 슬로건이 나왔다고 좋아했다. (내 주변 사람들이니 당연한 반응이지. 한 마디 했다간 내 성격에 가만있지 않고 한 따까리 할 거 같아서 대충 좋다고 해 준 걸지도)

객관적으로도 나쁘지 않는 슬로건이었던 거 같다. 당시 한 당협위원장은 한때 진보였던 자신이 한나라당으로 입당한 이유가 바로 이거라면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 본 것 같은 좋은 슬로건이라고 격려전화를 주기도 했다. 나는 득의만만하게 슬로건을 박근혜 비대위원장 앞에 내밀었다. 비대위원장은 딱 잘라 말했다.

“보수니 진보니 이런 말 쓰지 마세요. 우리 국민들은 편 가르는 거 싫어해요.”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국민과 함께”라는 다소 밋밋한 슬로건이 총선 메인 슬로건으로 채택됐다. 나는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명카피를 못 알아 본다, 역시 꼰대들이란 어쩔 수 없다’고 장탄식을 하며 팀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러나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판단이 옳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수와 진보는 정치권의 화두일 뿐이다. 오로지 국민이 있을 뿐이지, 보수가 어디 있고 진보가 어디 있는가. 우리 엄마가 보수인가, 우리 아빠가 진보인가.

우리 동네 편의점 아저씨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나 역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상주의과 속물근성이 실타래처럼 뒤엉킨 ‘끔찍한 혼종’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준석과 손수조를 발탁한 박근혜

이준석

박근혜 비대위의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이준석을 비대위원으로 발탁한 것이다. 이준석은 이젠 시대의 화두가 된 소위 ‘청년정치’의 선두주자다. 그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리지만, 누구도 그를 무시하진 않는다. 뱃지는 없어도 웬만한 국회의원 이상의 정치적 존재감을 자랑한다.

그를 발탁한 안목과 타이밍, 그 이후의 과정을 생각할 때 훗날 ‘십상시’로 불리게 된 젊은 보좌진 그룹의 정무감각이 어느 정도 경지였는지, 그리고 이를 승인하고 지지한 박근혜의 결단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모든 것이 변화했다. 안티꼰대 그룹은 타의에 의해 뿔뿔이 흩어졌고, 박근혜 대통령은 돌이킬 수 없는 꼰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된 박근혜의 변화를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요새 말로 ‘흑화했다’. 인수위 구성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이런 철지난 꼰대들을 구해왔지’ 싶을 정도로 구시대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인사들을 내세웠다. 그리고 나서 하는 일마다 구태스러운 삽질을 반복했다.

삽질이 너무 많아서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를 ‘복고주의 행정’이라고 명명해도 되지 싶다. 복고풍을 유행시키려면 현대적인 해석이 필수다. 근데 박근혜 정부는 막무가내로 70년대 식이었다. 나는 그 핵심에 김기춘 실장을 위시한 3040 그룹이 있다고 확신한다.

이준석과 함께 청년정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손수조라는 20대 여성이 있었다. 손수조는 2012년 총선 당시 문재인과 부산 사상에서 붙었다가 낙마한 후 뚜렷한 직책 없이 당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이를 걱정한 당내 핵심인물들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손수조에게 청와대 부대변인직이라도 주라”고 건의했다.

손수조
손수조

김기춘 실장은 “감히 청와대가 어디라고 철모르는 어린 것을 들입니까?”고 한마디로 딱 잘랐다. 이에 비해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내에 이전에 없던 부대변인직을 신설, 30대 고민정 아나운서를 그 자리에 앉혔다. 고민정 부대변인은 승진해서 지금 청와대 비서관급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30대는 6급 받기도 힘들었다. 비서관급이 되려면 적어도 50살은 넘어야 했다. 이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내 기억 속의 손수조는 이준석처럼 머리가 팽팽 돌아가진 않지만, 뚝심있고 의리있는 젊은 여성이었다. 이준석처럼 팔랑거리는 면이 없어서 오히려 믿음직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때 김기춘 실장이 손수조에게 청와대 부대변인직을 주었다면 지금쯤은 실력과 경험을 겸비한 괜찮은 30대 여성 정치인이 돼 있을 거란 아쉬움이 있다. 조선시대 사화를 연상시키는 문재인 정권의 ‘보수인사 대량 구속사태’를 지켜보건데 말도 안 되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김기춘 실장과 함께 수감됐을지도 모르지만.

◇꼰대의 육하원칙

사진 : 구글이미지

꼰대의 육하원칙이 있다.

Who (내가 누군 줄 알아?)

What (니가 뭘 안다고)

Where (어딜 감히)

When (나 때는 말이야)

How (어떻게 그걸 나한테)

Why (내가 그걸 왜?)

지금 자유한국당은 김기춘 실장의 그늘로부터 벗어났는가. 꼰대의 육하원칙에서 벗어났는가 의문스러운 때가 많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추가하자면, 이 글은 30년생, 40년생이라는 특정 세대를 겨냥한 글이 아니다.

김기춘 실장 개인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구세대 엘리트들의 특성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우리 당과 박근혜정부가 젊은 인재들을 좀더 기용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의 뜻이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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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라 2019-06-23 22:47:42
열심히 일한 박근혜 정부에게 할 말이 이거인가요? 더구나 정치보복으로 고생하는 이가 얼마나많은데 지극히 개인적인 서운함에서 나온 주관적 관점을 어찌 자유일보에서 그대로 실을 수가 있는지. 자유일보를 신뢰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현 시국에 하나도 도움이 안됩니다. 실망입니다.

김진호 2019-06-21 07:16:51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 30년대, 40년대 출신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글 같아 씁쓸하다. 30년대 40년대 생들이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기여한 공, 민족중흥에 매진한 정신을 어디에서 인정받아야 하ㅣ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