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낱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정지용(1902~1950)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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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비 내리는 날의 서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고요한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마음이 어수선하면 언어가 빚은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간결한 시행과 규칙적인 연 구성은 세상사 번잡을 멈추고 여백의 미를 느껴보라고 한다.

비 내리는 자연의 섬세한 묘사가 한 폭의 산수화 같다. ‘돌에 / 그늘이 차고, // 따로 몰리는 / 소소리 바람.’은, 비 내리기 직전 바람이 몰고 온 비구름 그림자가 바위에 드리웠다는 것으로 차다는 표현에서 가을의 촉감이 느껴진다. ‘앞섰거니 하여 /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는 빗방울이 바람에 불려가는 모습을 산새에 비유하여 ‘종종다리 까칠한 / 산새 걸음걸이’로 서둘러 비를 피한다. ‘여울 지어 / 수척한 흰 물살’은 빗물이 여울을 이루며 계곡을 흘러가는 모습을 의인화 했다. ‘갈갈이 / 손가락 펴고 // 멎은 듯 / 새삼 듣는 빗낱 // 붉은 잎 잎 / 소란히 밟고 간다.’ 멎은 듯 다시 오는 빗방울이 낙엽 위에 듣는 정경으로, 후두둑 낙엽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대로 들려올 것 같다.

역시 정지용이다. 정지용 시를 감상하는 것은 서정(抒情)의 숲에서 산림욕을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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