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해석 전쟁이 살벌해지는 이유
역사 해석 전쟁이 살벌해지는 이유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 승인 20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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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김원봉. 사진=연합뉴스

-민노총 등 강령, 반외세·반독재·반신자유주의·반재벌·반시장 등 넘어 아예 종북 내용 넘쳐

-반일·친일청산 마케팅, 역사와 인간을 모르고 순수한 정의감 등에 분노하는 사람 노려

-역사해석은 권력투쟁과 대중동원, 표심 핵심 변수. 권력 향배 치명적일수록 역사 전쟁 살벌

친일청산 목소리 높이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가 있는 듯하다. 한 부류는 권력 쟁취 전략차원에서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한 부류는 역사와 인간에 대한 무지와 결합한 순수하고 갸륵한 정의감의 발로다.

두 부류에 공통적인 것은 현재의 모순 부조리에 대한 무지와 둔감이다.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3불, 지대추구(약탈 만연), 청년에게 최악의 체제와 저출산, 파괴적인 균열과 갈등, 총체적인 지속가능성 위기의 양상, 구조, 원인을 도통 모르거나 외면한다.

민노총으로 대표되는 한국 노조의 강령에는 반외세, 반독재, 반신자유주의, 반재벌, 반시장, 종족적 민족주의, 친북을 넘어 아예 종북적 내용이 넘쳐난다(의심스러우면 민노총이나 금속노조 강령 직접 한번 읽어보시라).

이는 아마 1990년대 NL계 활동가가 싸질러 놓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조합원이나 간부들은 이런 강령을 알 리가 없다. 알면 이구동성으로 고치자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자와 청년/미래세대의 자유, 권리의 옹호자가 아니라 강자의 약탈(지대추구), 억압, 방어 기구로 변해 버린 노동조합의 추악한 실상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반일마케팅, 친일청산, 독재청산, 보수궤멸, 반시장, 반재벌(0.0001%탓), 세월호 진상규명 타령 등을 줄기차게 늘어놓는 간부들의 행동에 동의할 것이다.

◇‘백년전쟁’의 공격대상 박정희와 이승만

‘백년전쟁’의 공격대상인 박정희와 이승만. ‘백년전쟁’ 만든 인간들이 미국 역사를 편집한다면 인간 쓰레기, 양아치, 강도, 위선자의 나라로 될 것이다. 해방된 지 74년이 지난 시점에서 터져나오는 황당한 반일마케팅과 친일청산 타령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약탈, 억압, 위선을 호도하려는 정략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저런 조폭적, 약탈적 노조에 대한 억압적인 태도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였는데(그러면 반일 및 친일청산 마케팅은 감히 못했을 것이다), 천만다행스럽게도 2008~2017년은 친일시비 하기 좋은 이명박근혜 정권이었으니! 얼씨구나다. 이들의 반일, 친일청산마케팅이 어느 정도 먹히는 것은 역사와 인간에 대한 무지와 결합한 순수한 정의감에 따라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1982~83년(대학 1~2학년 때) 내가 그랬다.

이들은 탁류(부역자나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청류(항일투사)가 국가와 사회를 지배/주도 해야 좋은 나라가 된다고 믿는다. 사실 이게 조선 유교/성리학의 사고방식(수기치인)이자, 지금 북한의 사고방식이다. 백두혈통에 빛나는 대대손손 애국자요, 고매한 인격자요, 세상만사를 다 아는 천재라고 하지 않는가.

위정척사(정에 대한 집착), 청류에 대한 집착은 한반도가 화강암 지대라서 맑은 물을 접하기 쉬워서 그런지 모르겠다. 중국 중원에서는 물은 원래 탁류로 이를 정화해서 먹으니 청류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는 듯하다. 기독교도 인간을 그리 믿지 않는다. 한 때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 다윗, 솔로몬 왕의 타락을 왜 성경이 기록했겠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인간이 천사가 아니기 때문에 3권 분립을 디자인한 것 아닌가. 북한은 그런 지혜가 없으니 위수김동 타령을 해대는 것이고…

아무튼 탁한 기운을 가진 사람을 쓸어내고, 청정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헌법/법률과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집약되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이라는 제도의 위대한 힘을 알지 못한다. 처지와 조건에 따라, 제도와 문화에 따라 사람이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요컨대 문제를 사람/리더십에서 찾기 때문에 친일청산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친일청산도 주로 사람(권력자), 언어(용어), 왜색문화 청산이지, 일제시대에 도입된 근대적 제도 청산이 아니다. 당연히 재산권, 평등권, 근대적 사법절차 등 주요한 제도는 청산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런 것조차 청산해 버렸으니 지독한 야만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조선이 스스로 발전해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왔다고 믿는 사람들

순수한 정의감에서 친일청산을 부르짖는 자들은 친일부역자를 걷어냈다면, 아주 훌륭한 지도자들이 이끌어가는, 훨씬 훌륭한 자유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이 부상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일제가 강점하지 않았다면, 을사5적이 나라를 팔지 않았다면, 조선 사회가 스스로 진화 발전하여 지금 보다 훨씬 나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왔을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사실 나도 대학 1~2학년 때 이렇게 생각했다. 1980년대 내내 17~18세기 조선에서 자본주의 맹아를 찾는 환타지 논문들이 정말 많았다.

한마디로 무지요, 환상이다. 뿐만 아니라 (장준하의 돌베개, 김산의 아리랑 등을 통해서) 중경 임시정부와 광복군, 북만주 항일 빨치산 부대 등, 독립된 조선을 이끌어 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세력/청류들의 파벌(다툼), 조직력, 지력, 무력의 실상을 알고 보니, 군과 경찰을 중심으로 탁류들이 드셌던 대한민국보다 얼마나 나은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을지 회의적이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지 않았다면, 혹은 대한민국이 친일 부역자들을 제대로 숙청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다 부질없는 가정이다.

역사는 본래 경험과 기억의 편집이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편집 또는 해석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북한이나 ‘백년전쟁’을 만든 인간들이 미국 역사를 편집한다면, 아마 미국은 인간 쓰레기, 양아치, 강도, 위선자의 나라로 될 것이다. 친독부역자 청산을 잘했다는 프랑스도 그 흑역사만 들추면, 없어져야 마땅한 나라로 될 것이다.

편집 또는 해석을 좌우하는 것은 편집·해석자의 주관(판단)이다. 이는 국민(보편 이성)에게는 시대정신(시대적 과제 해결)이고, 정권에게는 정권 유지와 재생산이다. 시대적 과제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국가권력이 생사여탈권을 틀어쥔 분야가 너무나 많은 한국에서는 정권의 이해와 요구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인간이 역사를 쓰고 배우는 것은 과거의 연장인 현재(현실)를 잘 이해하여,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다. 이는 서양과 동양이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양(지중해) 문명권에서는 역사를 인과의 연쇄고리로 보고, 왜 그 때,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규명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인과의 연쇄고리를 추적하지 않는 동양

하지만 동양(중국과 한국)에서는 ‘인과의 연쇄고리’를 집요하게 추적하지는 않았다. 역사적 사건을 만든 주요 행위자들의 정치사회적 행위를 正(道)-邪(道)의 관점에서 재단하고 징치(懲治)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했다.

춘추필법(春秋筆法)이 대표적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동양은 서양보다 국가권력의 중앙집중화가 훨씬 심하고,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강했기에, 권력자 입장에서도, 이를 보좌하는 지식인들 입장에서도 도덕적, 종교적 권위(정통성)가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반일 감정과 진보에 널리 퍼진 대한민국 건국과 그 주도자인 이승만에 대한 왜곡, 조작, 폄하는 역사를 편협한 가치관으로 재단하는 행태의 전형이다. 물론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지독한 무지라는 토대 위에 올라가 있는 가치관이다.

역사 인식 내지 해석은 권력투쟁과 대중동원, 표심 향방의 핵심 변수이기에 정치집단에는 이를 왜곡할 충동이 넘쳐난다. 권력의 향배가 치명적일수록 역사 전쟁은 더 살벌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놈의 전제적 권력을 그대로 두면, 또 역사와 인간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두면 역사전쟁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지다가 공멸하고 말 것 같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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