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해묵은 규제로 꼽히는 대형마트의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을 철폐·완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기업 유통사와 소상공인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려 있어 법 개정을 위한 국회 논의과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연합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해묵은 규제로 꼽히는 대형마트의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을 철폐·완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기업 유통사와 소상공인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려 있어 법 개정을 위한 국회 논의과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연합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규제에 대한 존폐 논의가 유통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규제 완화를 위한 정부의 행보에 대형마트 업계는 반색하는 반면 소상공인들은 골목상권 수호를 외치며 발끈하고 있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 곧 국회가 논의에 착수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업계간 입장차로 인해 향후 입법과정에서 적잖은 불협화음이 예상된다.

24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윤석열 정부의 규제 혁신 기조에 맞춰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풀기 위해 관계부처와 개선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과 영업 제한시간에도 온라인 배송은 허용하자는 게 공정위의 생각이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상 지자체장은 매월 이틀을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로 지정해야 하고 영업시간도 오전 0시~10시 사이에서 제한할 수 있는데 이때는 대형마트가 운영하는 온라인쇼핑몰도 오프라인 점포를 물류·배송에 활용할 수 없다는 법제처 유권해석이 내려져 새벽배송이 불가능하다. 공정위는 이것이 경쟁 제한적 규제이자 소비자 편익을 저해한다고 봤다. 쿠팡·마켓컬리 등 대형 온라인 유통업체와 달리 대형마트만 온라인 영업을 규제해 경쟁과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판단이다.

대통령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의무휴업일을 아예 폐지하는 안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지난 21일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통해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포함한 우수국민제안 10건을 온라인투표에 부친 것이다. 이달 말일까지 진행되는 투표에서 지지도가 높은 상위 3개 제안은 국정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날 오후 2시 현재 의무휴업 폐지가 가장 많은 30만1642개의 ‘좋아요’를 얻어 정책화가 유력시된다.

현재 유통업계는 이런 정부의 정책방향을 환영하며 기대감에 쌓여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유통업계의 경쟁구도가 온라인 대 오프라인으로 전환된지 오래인데 10년전의 케케묵은 일방적 대형마트 규제로 괜한 소비자만 불편이 컸다"며 "규제가 사라지면 영업적 연속성이 생겨 소비자 권익과 수익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규제는 골목상권 보호를 주목적으로 2012년 도입됐지만 실효성에는 지속적인 의문이 제기돼 왔다. 여러 조사에서 의무휴업으로 인한 전통시장 등 소상공인의 반사이익이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실제 통계청에 의하면 소매업 매출 중 대형마트의 비중이 의무휴업 규제가 도입된 2012년 14.5%에서 지난해 8.6% 줄어들었지만 전통시장 등 전문소매점 역시 같은 기간 40.7%에서 32.2%로 추락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도 대형마트 휴업일에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비율은 단 16.2%에 그쳤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대형마트와 골목상권 모두 온라인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생존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며 "이제는 두 업계가 동반성장할 진정한 상생의 묘를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물론 소상공인들은 골목상권을 보호할 최후의 방어막조차 없애려고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이 2018년 대형마트 7곳이 낸 헌법소원에서 합헌 결정된 적법한 제도라는 점도 부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가 규제 혁신과 민간 주도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수준으로든 규제 완화가 추진될 가능성을 높게 본다. 다만 정부의 의지와는 별도로 최종 결정권은 국회에 있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은 입법부 소관인 까닭이다.

대형마트와 소상공인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주제답게 이미 국회에는 대형마트 규제를 줄여야 한다는 측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측의 개정안이 여럿 발의돼 있다. 전자는 이종배·최승재 국민의힘 의원, 후자는 이동주·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중 최 의원은 지자체가 지역 주민 등과 협의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시행 여부와 일수를 자율 선택하는 방안, 이동주 의원은 영업제한시간을 2시간 늘리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국유통학회 고문으로 활동 중인 한 학계 관계자는 "앞으로 국회에서 열띤 논의가 있겠지만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을 계속 대결구도로 놓으면 사회적 갈등만 커질 수 있다"며 "여야는 이 문제를 정쟁 수단으로 삼지 말고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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