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끝나고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총경)이 회의장 밖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
23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끝나고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총경)이 회의장 밖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에 반발하는 총경급 경찰관들이 단체 회의를 열고 "(경찰국 설치를 위한) 법령 제정 절차를 당분간 보류하라"는 의견을 냈다.

경찰 지휘부는 이를 정부에 대한 항명으로 해석하며 "참석자를 엄정 조치하겠다"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이미 이 회의가 열리기 전에 회의를 열지 말 것을 당부했던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역시 이 사태 수습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다.

23일 오후 2시부터 총경급 경찰관들은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4시간 가량 진행됐으며 전국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총경 190여 명이 참석했다.

총경 계급은 13만에 달하는 경찰 조직의 지휘 핵심이다. 주로 일선 경찰서장 보직에 배치되기에 ‘경찰의 꽃’으로도 불린다. 총경 계급 경찰관이 65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날 회의는 전국 총경 3분의 1 정도가 참석한 셈이다.

총경들은 이날 회의 후 입장문에서 "많은 총경이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규칙이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우려를 표했다"며 "참석자들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민주적 통제에는 동의하지만, 경찰국 설치와 지휘규칙 제정 방식의 행정통제는 역사적 퇴행으로 부적절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사안에 국민, 전문가, 현장 경찰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미흡했다는 점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총경들은 향후 경찰이 국민의 통제를 받는 경찰로 개혁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도 논의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오늘 논의된 내용은 적정한 절차를 통해 윤희근 경찰청장 직무대행(후보자)이나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게 전달하겠다"며 "앞으로 경찰의 중립성, 책임성, 독립성 확보를 위해 경찰청 지휘부와 현장경찰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노력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기회에 경찰이 오직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직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민의 통제를 받을 수 있는 근본적인 제도적 개혁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회의를 제안한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은 회의 후 취재진과 만나 "아주 열띤 토론이 진행됐다. 경찰국 신설에 찬성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면서 "(경찰국 신설 강행 시) 우리가 할 수 있는 법제도적 노력을 계속하기로 했다. 2차, 3차 회의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경찰청은 입장문을 내고 "이번 총경급 회의와 관련해 국민적 우려를 고려해 모임 자제를 촉구하고 해산을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임을 강행한 점에 대해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복무규정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한 후 참석자에 대해 엄정하게 조치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또 유사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복무 규율 준수사항을 구체화하고 향후 위반행위 등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며 "아울러 빠른 시일 내에 총경급 이상이 참석하는 지휘부 워크숍 및 현장방문 등을 통해 제도개선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하고 엄정한 공직기강을 확립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는 이 회의를 수차례 만류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지금 한가하게 그런 논의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비판했다. 그럼에도 이 회의가 강행되며 주동자 및 관련자에 대한 징계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등을 위한 대통령령과 행안부령은 지난 21일 차관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오는 26일 국무회의를 거쳐 8월 2일 공포·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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