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교 폭파는 빨랐는가?
한강교 폭파는 빨랐는가?
  • 글 최응표 한국사바로알리기미주본부 대표/ 영역 남신우 북한인권국제연대 대표
  • 승인 2019.0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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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69주년 특별기획] [7]
1950년 6월 25일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북한군 T-34/80 탱크

남침 당시 국군에게 가장 위협적인 무기는 소련제 T-34 탱크였습니다. 수도 서울은 38선으로부터 불과 45km 떨어져 있었고 이 거리는 최고 시속 55km에 달하는 북한의 T-34 탱크로 1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북한군이 전쟁 3일 만에 서울을 함락시킬 수 있었던 것도 탱크의 압도적 위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의 한강교 폭파는 정당했고, 북한군의 진격 속도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군사작전 상으로 늦은 결정이었던 셈입니다. 한편 한강교 폭파가 너무 빨라 서부 전선의 한국군 군대가 조직적으로 철수 할 수 없었고 중화기를 다 버리고 나룻배로 한강을 건넌 것은 잘못이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북한군 T-34/80 탱크

그러나 세상엔 한쪽만 진실인 경우가 없습니다. 늦게 폭파하면 파죽지세 북한군이 다리를 건너고 빨리 폭파하면 우리 측 장비를 잃는 상황이었으니 다만 시기의 문제였을 뿐입니다.

가장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부분이 한강교 폭파 피해 상황입니다. 한강교 폭파로 다리를 건너던 500~800여 명과 40~50대 가량의 차량이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남한 좌익들은 7만 2천명 이상의 피해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좌익들, 한강교 폭파 희생 규모 거짓 확대

한강철교가 폭파되는 순간. 1950년 7월 3일 미 공군기가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한강철교를 폭격하고 있다. 오른쪽의 이미 폭파된 다리는 한강인도교이다. 미군은 종전 때까지 우세한 공군력으로 북한군에 타격을 입혔다.
한강철교가 폭파되는 순간. 1950년 7월 3일 미 공군기가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한강철교를 폭격하고 있다. 오른쪽의 이미 폭파된 다리는 한강인도교이다. 미군은 종전 때까지 우세한 공군력으로 북한군에 타격을 입혔다.

한강교 폭파 이전 철수한 병력은 6월 30일 기준으로 2만 4천명이었고 당시 전체 우리군 병력이 9만6천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7만 2천명이 한강교 폭파로 희생됐다는 주장이지만, 이는 거짓말입니다. 서울 전선에 투입되지 않은 후방 부대 인원, 미쳐 동원되지 않은 인력, 한강교 폭파 이전 이미 철수한 병력, 폭파 이후 부대 복귀 인력 등을 고려하면 우리 군과 민간인 피해는 훨씬 적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피해 규모를 확대할까요. 그것은 이승만을 한강교 폭파 주범으로 몰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다리를 건너던 민간인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정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남으로 가는 길은 피난민들로 북새통이고 숨어있던 공산주의자들이 뛰쳐나와 설쳐대는 위급한 순간에 적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이 한강교 폭파였다는 것은 시기의 문제가 있다 해도 전시 상황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희생 없는 전쟁은 없습니다.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 전쟁 수행의 제1 목표일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피난이나 한강교 폭파는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승만 대통령이 피난을 안 가고 서울에서 북한군에 붙잡히거나 처형당했다면 좌파들은 대통령을 칭찬했을까요?

피난민들이 다리 위에 있다는 이유로 한강교 폭파를 계속 미뤘다면 잘했다고 했을까요? 절대 아닐 겁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합리적인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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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판]

Was the Han River Bridge Blown up too Quickly?

1950년 6월 25일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북한군 T-34/80 탱크

During the invasion, the North Korean weapon that posed the biggest threat to the South Korean forces was the Sovietmade T-34 tanks. The Capital was only 45 km away from the 38th Parallel, and a North Korean T-34 tanks running at full speed at 55km/h could reach Seoul in one hour.

The reason that the North Koreans were able to conquer Seoul in 3 days was because of the overwhelming firepower of the tanks. From that perspective,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decision to blow up the Han River Bridge was justified and considering the speed at which the North Korean forces were moving, it can be viewed as an action taken too late, militarily speaking.

There were arguments that the bridge was blown up too quickly and therefore the Korean forces in the western front could not evacuate effectively, that they had to give up all the heavy guns to cross the river on small boast. However, there are always two sides to the truth.

If the bridge was not blown up in time, the North Korean forces would have used it to advance more quickly to the south. It was a matter of time. The bridge had to be blown up. Furthermore, the most distorted fact during the first days of the war was the blowup of the Han River Bridge.

It is true that between 500 and 800 people perished and 40 to 50 motor vehicles were destroyed by the blowup. Those who exaggerate the casualties from the blow up calculate the numbers this way: As of June 30th, about 24,000 troops crossed the bridge to the south.

1950년 6월 25일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북한군 T-34/80 탱크

There were a total of 96,000 troops in the Korean army at the time. So these people claim that 72,000 troops were killed due to the blow-up of the bridge. This is total nonsense. When we count the troops who were not deployed to the Seoul defense, those who were not mobilized yet at the time, and those who returned to their units after the blow up, the number of casualties from the bridge blowup was much lower, both the military and the civilian.

Why do these people try to increase the number of casualties then? Because they want to blame President Syngman Rhee for the blowup and the high number of alleged casualties. They want to picture the President as the heartless and cruel leader who did not care about the people’s lives.

The roads leading to south were clogged with a human sea of refugees, while the communists and their sympathizers came out from everywhere and were fomenting trouble, and in this dead-end situation, the one method to stop the advance of the enemy – blowing up the Han River Bridge – may have been an issue of timing, but must be understood from a wartime situation.

There is no war without sacrifice. The number one objective of waging war would be to gain maximum effect with minimum sacrifice. The evacuation of President Syngman Rhee and the bombing of the Han River Bridge must be viewed from this viewpoint.

If President Rhee did not evacuate but remained in Seoul, and was then captured by North Korean soldiers or even executed, would the leftists be praising the President?

If the bombing of the bridge was delayed indefinitely because of the citizens evacuating and crossing over the bridge, would the leftists praise this as a positive action taken? Absolutely not. It is the rule, not the exception, that those who oppose for the sake of opposing, will not hear of any rational explanation.

한강철교가 폭파되는 순간. 1950년 7월 3일 미 공군기가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한강철교를 폭격하고 있다. 오른쪽의 이미 폭파된 다리는 한강인도교이다. 미군은 종전 때까지 우세한 공군력으로 북한군에 타격을 입혔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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