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열
정창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7월 12일 발표한 ‘작황 전망과 식량 상황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주민 대다수가 적은 수준의 식량 섭취로 고통받고 있으며 다양한 식품군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북한을 지난 3월에 이어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나라로 재지정하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외부 식량 지원을 받아야 하는 나라로 꼽힌 건 FAO가 해당 조사를 시작한 지난 2007년 이래 연속 16년째다.

FAO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북한 당국 역시 식량 부족 등 심각한 경제 사정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 노동신문은 7월 19일자 기사에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기본 종자, 주제는 여전히 자력갱생, 자급자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관리 밑에서 계획적으로 진행하는 중앙집권적인 자력갱생으로 되어야 전국적 범위에서 자립경제의 토대를 보강하고 잠재력을 남김없이 발양시킬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제는 너무 낡아서 더 이상 기워입을 수도 없는 자력갱생 원칙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7월 17일 ‘당 중앙의 결정과 지시를 결사 관철하는 혁명적 기풍을 더 높이 발휘하자’란 제목의 사설에서는 "지금 우리 앞에는 유례없는 시련이 가로놓여 있다"라며 "당 정책 관철을 방해하는 주되는 장애물인 패배주의와 무책임성, 무능력과 요령주의, 오분열도(五分熱度)식 일 본새(업무태도), 본위주의를 비롯한 온갖 그릇된 사상관점과 일 본새를 불살라 버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자력갱생 원칙은 1960년대 중·소분쟁으로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원조가 삭감되면서 5개년 계획 추진에 차질이 생기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한 정책이다. 이후 북한은 이 원칙에 입각한 자립적 민족경제의 건설을 경제정책의 기본노선으로 삼아 왔다.

‘도토리 키재기’ 격이기는 하지만, 자력갱생 원칙을 채택할 당시만 해도 북한의 경제총량은 남한보다 앞서 있었다. 그런데 60여 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데 비해 북한은 지구상에서 여전히 가장 가난한 체제에 머물고 있다. 이는 자력갱생을 고집한 결과물로서, 그 책임은 모든 권력을 독점·세습하는 김씨 정권에 돌려져야 한다. 하지만 북한 독재자는 ‘패배주의, 무책임성’ 등을 운운하면서, 부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경제 전반을 붕괴시켜 놓고서도, ‘호우 피해를 입은 살림집 복구’라든가 ‘코로나19 치료약 전달’ 등 지엽말단적인 행위를 이민위천 사상의 발로라고 생색을 내면서 충성을 촉구하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이민위천이 아니다.

공자가 태평성대의 이상으로 꼽는 요(堯) 임금 시대에 불렸다는 민요에 ‘땅을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라는 뜻의 격양가가 있다.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을 하고(日出而作),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쉬며(日入而息) / 우물을 파 물을 마시고(鑿井而飮), 밭을 갈아 음식을 배불리 먹으니(耕田而食) / 황제의 권력이 내게 무슨 소용 있겠는가(帝力於我何有哉)

격양가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요 임금이 민정을 살피기 위해 변복을 하고 나섰다가, 한 노인이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격양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자 요 임금은 ‘백성들이 잘 사는구나’라고 만족해서 돌아왔다고 한다.

진정한 이민위천은 이처럼 인민들이 지도자를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격양가를 부르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인민들의 자유를 대폭 확대하여 각자의 능력을 100% 발휘하게 해야 한다. 자폐(自閉)나 다름없는 자력갱생 정책으로 경제난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백년하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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