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실각위기, 중앙정치국상무위원 7인도 사투? 
시진핑 실각위기, 중앙정치국상무위원 7인도 사투? 
  • 최영재 기자
  • 승인 2019.0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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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간부, 이익탈취와 권력투쟁 죽느냐 사느냐 싸움

“이익탈취와 권력투쟁에서 죽느나 사느냐 싸움을 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모 고급간부가 미 하버드대학을 방문했을 때에 그렇게 말했던 것을 이 대학의 연구원인 윌리엄 오버 홀트 박사가 작년 말 영국 BBC프로그램에서 밝혔다.

오버 홀트 박사는 저서 <중국・다음의 초대국>에서 1995년에 아시아 태평양상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오랜 동안 중국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 오버 홀트 박사는 “중국의 지도자가 결단을 하지 않는다”고 넌지시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난했다. 그는 이어 “중국의 성공은 계속되자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홍콩에서 발간되는 일간지 <애플 데일리>도 지난 17일 논평가의 말이라면서 중국공산당의 최고 간부인 중앙정치국상무위원 7인(차이나 세븐)과 다음으로 이어지는 중앙정치국위원을 합친 25명은 시진핑파의 비율이 높지만 시(習)의 신 노선을 강력하게 신임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차이나 세븐, 죽기살기 권력투쟁

이 신문에 따르면 서열 3위의 율전서(栗戦書)는 시(習)와 가깝지만, 서열 2위의 이극강(李克強) 총리와 서열 4위의 왕양(汪洋) 부총리, 강택민(江沢民)파로서 서열 7위의 한정(韓正)은、시(習)에 대해서 암암리에 비판적이라고 한다. 서열 5위의 왕호녕(王滬寧)과、서열 6위의 조낙제(趙楽際)는、국내외의 문제에 이상하리만큼 관심이 없다고 보도했다.

이극강 총리와 왕양 부총리는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으로 시(習)와의 관계는 원래 멀다. 한편 선전선동 업무를 맡고 있는 왕호녕(王滬寧)은 한때 시진핑을 황제와 같이 추켜올렸지만 실제로는 시진핑파의 적인 강택민(江沢民) 전 국가주석파 아래서 암약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상해의 복단(復旦)대학에서 국제정치분야교수였던 王씨는 별명이 ‘강(江)파 2호 인물’로 불리었던 증경홍(曽慶紅) 전 국가부주석(前 서열 5위)가 발굴했다. 30년 전의 ‘천안문 사건’이후 왕씨는 당지도이론의 브레인이 되어 중앙정책국주임 입장에서 강택민(江沢民)・호금도(胡錦濤)・시진핑(習近平) 등 국가주석 3대를 섬긴 두뇌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전국에 다수 교수 가운데서 뽑혀 로켓 출세를 해 온 사람이 왕호녕(王滬寧)이다.

현재 차이나 7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투쟁을 보면 모택동시대의 중국 최고 간부 내에서 일어났던 사투를 연상할 수 있다. 모택동 시대 당시 모택동 주석의 후계자였던 유소기가 실각하고 옥중사(獄中死)했다. 그후 임표(林彪)와 그 일파는 모택동을 ‘모택동 천재론’으로 추켜세워 회유했다. 그러나 임표 일파는 배후에서 모택동 암살과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실패했다. 이후 임표는 소련으로 망명하려고 탔던 비행기가 몽골에 추락하여 사망했다. 1971년 9월 13일의 ‘임표(林彪)사건’이다.

현재 차이나 세븐도 사투가 한창이라고 하면 가까운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sopulg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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