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시어른이 돌아가시고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집에서 안부전화가 왔다

노인정에 가기는 어정쩡한 젊은 노인에게 방을 내어주어도 되냐고 동네 이장이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샘가 감나무에 감이 무겁게 열리자 옆집에서 곶감을 좀 보내줄 테니 감을 따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전기도 수도도 끊어놓은 그 집에 물이 들어오고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동네에서 가장 밝은 집이 된 빈집

빈집의 주인은 빈집인데 멀리 있는 아들 내외에게 물어온다

떼내지 않은 나무문패는 옛 주인의 이름으로 살아있어 하늘 번지수를 동사무소 가서 물어야 할지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강영선(1969~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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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빈집은 얼마 못가 흉가처럼 변해 마을미관을 해치고 위생을 위협한다. 농촌 도시 할 것 없이 지자체마다 빈집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는 귀농귀촌 대상자에게 창업과 주택구입 자금 일부를 대출해 주지만 백약이 무효다. 흥미로운 점은 빈집 실태를 파악하는 데 한전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전은 전력 사용 데이터를 수집하고, 매달 10㎾h 이하 전력을 사용하는 집은 빈집으로 추산한다. 10㎾h는 4인 가족 한 가구가 하루 평균 사용하는 전력사용량이다. 이 조사에 의하면 빈집은 전국 주택의 약 5%에 이른다고 한다.

시문학은 현실 문제를 이성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감성은 수동적이어서 현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하기보다 순응한다. 감성은 인간과 세상을 잇는 원초적 사유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화자(話者)는 빈집 주인 며느리다. 그녀에게 빈집은 계륵(鷄肋)이지만 한편으론 시어른과의 추억이 쌓인 곳이다. 화자는 빈집의 상속권자일 테지만 굳이 ‘빈집의 주인은 빈집’ 즉 돌아가신 시어른이라고 진술한다. 빈집과 관련해 걸려오는 이장의 전화 또한 생경하다. 왜냐하면 화자의 인식 속에 빈집 주인은 여전히 돌아간 시어른이기 때문이다. ‘떼내지 않은 나무문패는 옛 주인의 이름으로 살아있고’, 그렇기 때문에 시어른이 계시는 ‘하늘 번지수를 동사무소 가서 물어야 할지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하고 중얼거린다.

‘시 자가 들어간 건 시금치조차 싫다’는 세태지만, 화자는 돌아가신 시부모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건 아마 ‘빈집 주인’의 성품이 온화했고 며느리를 사랑으로 감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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