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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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앞에 남녀노소 2000여 명이 모였다. 이른바 ‘종전 평화문화제’에 참가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중단, 한미군사훈련 중단 등 ‘북한 불가침’에 합의할 것을 촉구하며 "한국전쟁을 끝내자"고 외쳤다.

구경꾼으로 지켜보건대, 시위는 활기차고 재미있었다. 이 나라엔 확실히 ‘시위의 달인들’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자리에 안 빠지는 가수 이은미도 참석했다. 그녀가 박수갈채 속에 노래 세 곡을 부르는 동안 젊은이들도 열심히 따라 불렀다.

하지만 그 자리에 참석한 군중들의 꿈과 희망은 애처로워 보였다. 이유는 그들의 외침이 너무나 허무하고 순진한데다 잘못된 정보와 오해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참석자 중 온건파 한 명은 김정은이 불가침에 동의한 적 없으며 핵프로그램을 포기할 기미가 없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북한이 언제든 7차 핵실험을 실행할 준비가 돼 있음을 고려할 때 이번 시위는 더욱 안타깝다.

김정은의 관심사는 한반도 평화가 아니라 동맹국이자 후원자인 중국 공산당 반응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북한의 빈곤·질병 상황이 가중됐지만, 체제유지를 걱정할 뿐 굶주린 수백만 주민의 고통에는 큰 관심이 없다. 김정은은 내부적 충성심 고취에 심혈을 기울인다. 자신의 철권통치를 위해 보위세력의 충성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그들의 필요도 채워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 임진각 시위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69주년인 7월 27일을 겨냥한 행사였다. 당일이 주중이라 앞당겨 주말에 진행된 것이다. 6·25전쟁을 끝내라는 그들의 구호는 ‘가짜 평화’를 대변한다. 주한미군 2만8500명의 철수를 원하는 북한 및 친북세력의 선전용 메시지다. 시위대 주장처럼 한미동맹이 무효화된다면 대한민국은 중국 지원을 받는 북한의 공격에 당장 노출된다. 중국은 북한의 생존을 위해 싸운 바 있다. ‘항미원조’(抗美援朝)가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공식 역사관이다. 러시아 또한 현 국제역학 속에서는 옛소련이 그랬듯 주요 군사물자를 제공하며 북한 편에 설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 임진각 행사는 수백 개의 평화 지향적인 단체들에 의해 조직됐다. 참석자 다수가 온건한 사람들 같지만, 그 배후는 다르리라 본다. 한미연합군사훈련 반대가 주요 슬로건이었다는 점에서 시위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시위대는 한미연합군사훈련에 한반도 전쟁 상태 지속의 책임을 물었다. 북한의 일관된 입장이다. 미·북 회담이 좌초하면서 지상·공중·해상 한미연합 실전훈련계획에 점점 더 격하게 반응해왔다.

북한 외무부가 운영하는 싱크탱크(군축평화연구소)의 최진 부국장은 평양에서 A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미연합훈련의 결과로서 "전례 없는 불안 상태"를 경고했다. 미국 정부의 "시대착오적이고 자살행위에 가까운 적대정책"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임진각 시위에서 울려퍼진 공허한 정치 슬로건도 마찬가지다. 시대착오적이고 자살행위에 가까우며 바람직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위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북한 정권 측에 가담되고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했다.

영어로 발행된 시위대 전단지엔 "대결과 갈등의 상징 한반도" "우리 손으로 한국전쟁을 끝내고 70년간 이루지 못했던 미래를 만들자"고 쓰여 있었다. 듣기 좋은 말이다. 정확히 김정은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말고는, 참으로 아름다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 달콤한 구호의 이면에선 기막힌 일이 벌어지는 중이다. 북한을 대변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유로운 시위 권리를 보장하는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파괴하고자, 김정은은 점점 더 많은 미사일과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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