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김대호

제도나 정책을 디자인할 때 부딪히는 주요 난제 중의 하나는, 문제가 환경·제도·사람 중 어디에서 주로 연유하는지와 문제가 세계 보편적인지, 한국 특수적인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이는 집에 전기가 나가면 맨먼저 정전이 우리 집만의 문제인지, 동네 전체의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지난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쟁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될 경우 공천학살 우려에 따른 민주당 분당 가능성, 다른 하나는 대우조선 하청지회의 불법적 사업장 점거농성 진압을 위한 공권력 투입의 정당성과 후폭풍이었다.

그런데 공천학살과 사업장 점거농성은 한국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부조리다. 공천학살이 가능한 것은 국회의원 후보를 지역 당원(조직)이 아니라 당대표가 결정하는, 민주주의에 완전히 반하는 정당법 및 당헌당규 때문이다. 동시에 유력 후보를 배제하고, 아무나 내세워도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상향식 공천을 법제화하거나, 다당체제가 정착되도록 선거제도를 개혁하면 해결된다.

원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공정을 맡은 용역(협력)업체 노조조차 파업 시 원청 사업장 점거를 당연시하는 것도,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부조리다. 이는 권위주의 정권들이 파업 대오가 사업장 밖으로 나오는 것을 극도로 꺼려, 파업은 공장 안에서만 하도록 강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파업은 타인의 재산인 공장 밖으로 걸어나와 진을 치고, 일하러 들어가는 배신자를 야유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분개하고 통탄하는 수많은 갈등의 배후에는 보편이성이나 상식에서 먼 한국 특유의 제도가 있다. 사람의 도덕성이나 지도력이 아니라 제도에서 기인하는 문제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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