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 재건축조합과 건설사업 관리사(PM) 리츠인홀딩스의 상가 분쟁도 공사 재개를 막는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은 둔춘주공 재건축사업 현장. /연합
둔촌주공 재건축조합과 건설사업 관리사(PM) 리츠인홀딩스의 상가 분쟁도 공사 재개를 막는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은 둔춘주공 재건축사업 현장. /연합

공사 중단 100일째를 넘어선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에 더욱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HDC), 대우건설, 롯데건설 등 시공사업단이 조합에 사업비 대출금 대위변제 후 법적 조치, 다시 말해 구상권 청구 가능성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최후의 통첩인 셈이다.

대위변제는 은행에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연대보증인이 채무자를 대신해 대출금을 상환하는 것이다. 구상권은 대출금을 대신 변제해 준 연대보증인이 채무자에게 그에 대한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앞서 NH농협은행 등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의 대출 금융기관 24곳의 모임인 대주단(貸主團)은 다음달 23일 만기가 도래하는 7000억원 규모의 사업비 대출 연장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시공사업단에 전달했고, 이에 시공사업단이 조합에 구체적인 상환 계획을 요청한 것이다.

시공사업단이 지난 26일 조합에 보낸 공문에는 "조합이 사업비 대출금을 만기일까지 상환하지 않으면 시공사업단은 연대보증인으로 법적 불이익을 입게 될 지위"라며 "약정 이행을 위해 대위변제 후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8월 5일까지 사업비 대출금 만기 도래에 따른 상환 계획과 세부 일정을 알려달라"고 덧붙였다.

대주단은 조합이 시공사업단과의 갈등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향후 사업 추진이 불확실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만일 만기일까지 대출 연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조합원당 1억여원의 금액을 상환해야 한다. 이를 상환하지 못하면 조합이 파산하게 되고, 시공사업단은 7000억원을 대신 갚은 뒤 조합에 구상권을 청구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시공사업단이 경매로 자금을 회수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조합원들은 현금 청산만 받고 사업 소유권을 뺏길 수도 있다. 제2의 트리마제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성수동 트리마제는 사업 과정에서 추가 분담금 갈등이 있었고, 시공사인 두산중공업은 보증금액 3600억원을 상환한 뒤 경매에 부쳐진 사업을 인수했다. 돈을 못 갚은 조합원들은 집을 빼앗겼다.

시공사업단은 공사 진행에도 발주처에 청구하지 못한 공사대금, 즉 미청구공사액도 모두 회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의 지난 1분기 기준 미청구공사액이 지난해 말보다 480억원가량 증가한 3071억원으로 알려진 가운데 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롯데건설도 2500억원에서 3100억원 수준의 미청구공사액이 쌓여 있는 상태다. 미청구공사액은 잠재적인 손실과 대손충당금 반영이라는 리스크로 연결되기 때문에 시공사업단은 강경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합은 현재 마땅한 카드가 없는 상황이다. 사업비 대출의 만기가 다가오면서 김현철 전 조합장은 시공사업단의 대위변제를 막기 위한 신규 대출을 추진하다 지난 17일 돌연 사퇴했다. 조합도 시공사 교체는 물론 사업비 신규 대출에 대해서도 더 이상 검토하지 않겠다며 ‘치킨게임’ 끝에 백기투항한 상태다. 하지만 정비업계에서는 현 조합 집행부 상당수가 최근 문제로 대두된 상가 쪽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어서 전원을 교체하지 않는 이상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를 풀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둔촌주공 상가 분쟁은 10년 전인 2012년 상가 단체가 무상지분율 190%를 약속받고 건설사업 관리사(PM) 리츠인홀딩스와 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예를 들어 10㎡ 상가를 소유한 조합원이 19㎡짜리 신축 상가를 추가 분담금 없이 분양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당시 리츠인홀딩스는 상가의 설계와 분양 등의 비용을 부담하고, 대신 조합원 지분을 뺀 나머지 신축 상가 분양 수익을 챙기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현 조합의 지원 아래 새로 들어선 통합상가운영위원회가 무상지분율 270%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리츠인홀딩스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가만히 있을 리 없는 리츠인홀딩스는 이 계약의 해지가 부당하다며 상가 건물에 대한 유치권을 행사 중이다. 시공사업단은 공사 재개의 조건으로 해당 분쟁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고, 총회 의결까지 거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사가 장기간 중단된 상태에서 조합원들은 불안한 마음에 편법까지 써가며 입주권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올해 초 전용면적 84㎡를 받는 조건의 매물 호가는 25억원 안팎에서 형성됐는데, 지금은 19억원짜리 매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