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정구영

지난 2020년 9월 2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간호사들을 격려하는 글을 올렸다. "전공의 등 의사들이 떠난 의료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간호사분들을 위로하며, 헌신과 노고에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린다"는 것이다.

당시는 전공의들이 문재인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해 파업을 벌이고 있던 중이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보기엔 시점이 묘하다. 의사와 간호사의 갈라치기, 의사들을 향한 대리전을 간호사들에게 주문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파업의 발단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이다.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우자 암환자 수술 일정이 미뤄지고,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등 의료공백이 발생했다. 좌파진영은 이를 이기적이고 배부른 파업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것에 의사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며 역공을 펼쳤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다. 액면만 보면 전공의 파업은 집단이기주의의 전형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실은 늘 ‘불순한 의도’에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전공의가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로서 역할을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병원이다. 병원이 태부족한 지방에 10년 간 4000명이나 지역의사를 늘려 놓으면 결국 동네에서 감기 같은 단순치료만 하게 될 것이라는 게 전공의들의 주장이다.

공공의대 설립은 추진 배경부터 의심스럽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학생은 전문가·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시도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선발해 추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곧장 "의사가 될 학생을 뽑는데 왜 시민단체가 관여 하느냐", "현대판 음서제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뒤따랐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 전 대통령의 ‘방패막이’로 나선 인물이 더불어민주당의 고민정 의원이다. 그는 "대통령이 간호사들에게 보낸 감사 메시지에 대해 편가르기라며 떠들썩하다.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며 놀랐다. 길에 쓰러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무슨 의도로 그러느냐’며 오히려 화를 내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조국흑서’의 공저자인 서민 단국대 교수는 "초등학교 6학년만 돼도 갈라치기 의도를 알 수 있는 문통의 페이스북 글을 희한하게 해석했다"며 "사람들은 고민정이 진짜 지능이 모자란 건지 아니면 문통에 대한 충성심이 지나치다보니 맛이 간 것인지를 놓고 싸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롱 섞인 비판이다.

고 의원은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의 수사결과가 뒤집혀 문 전 대통령이 코너에 몰리자 또다시 등장한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월북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 발표의 취지이지만 정작 월북이 아니라고 판단할 만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월북이 아닌 근거를 이야기해야 저희가 거기에 대한 반박을 하지 않겠느냐"며 "그런데 아무런 근거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고 강변했다. 부존재 증명을 요구한 것이다.

의심의 대상이 된 행위가 없었음을 입증해야 할 책임은 당시 집권세력인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게 있다. 그럼에도 입증 책임을 윤석열 정부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부존재 증명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아주 비합리적인 논리 과정이다. 고 의원의 말은 ‘네가 마녀가 아님을 네 자신이 입증하라’는 것이다. 팬덤정치를 염두에 둔 선동 아니면 미련하고 우악스러운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언행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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