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69주년 특별기획] 전쟁의 흐름을 바꾼 춘천 지구 전투
[6.25전쟁 69주년 특별기획] 전쟁의 흐름을 바꾼 춘천 지구 전투
  • 글 최응표 한국사바로알리기미주본부 대표/ 영역 남신우 북한인권국제연대 대표
  • 승인 2019.0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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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월 한국군의 모체가 되는 국방경비대 창설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46년 1월 한국군의 모체가 되는 국방경비대 창설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

1950년 6월 들어 북한의 남침 징후를 느낀 국군은 전 장병의 외출, 외박을 금지한 가운데 비상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별 특별한 일 없이 몇 주가 지나자 육군 본부에서는 마침 농번기이기도 해서 전쟁 발발 하루 전인 6월 24일 전 장병의 외출, 외박을 허용하였 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 6월 25일에는 각 부대에 약 3 분의 1정도의 장병들만이 남아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춘천 지역을 맡고 있던 6사단 김종오 사단장은 당시 상황을 안심할 수 없어 여전히 장병들의 외출, 외박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6월 25일, 북한군의 작전 계획은 북한군 2사단을 춘천 지역에 침투 시켜 그날로 춘천을 점령하고 다른 부대를 인제와 홍천 지역으로 침 투시켜 국군 6사단의 퇴로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은 6사단의 완강한 저항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6사단은 3일 동안(6월 25일~27일) 백병전을 벌이며 춘천을 지켜냄으로써 북한군의 전략에 차질을 주었고 한강 방위선 구축과 미군이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6ㆍ25 전쟁의 흐름을 차단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아! 육탄 11용사

가장 중요한 때 가장 결정적 전과를 거둔 춘천 지구 전투의 승리 뒤에는 북한군의 절반도 안 되는 빈약한 포병 부대를 이끌고 적 1개 연대를 전멸시켜 승기를 잡은 청성 포병 부대의 신화와 육탄 11용사의 활약 그리고 특공대를 조직해 북한강 계곡을 따라 남하한 북한군 자주포들을 수류탄과 화염병으로 파괴한 심일 소위의 전공(戰功)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대승리를 거둔 전투에서 국군 6사단은 적 살상 6.800명, 포로 120명, 전차와 자주포 18대를 파괴한 반면, 국군의 피해는 전사 200명, 부상 350명이었습니다. 1.300여 명의 실종자가 생겼지만, 이들은 대부분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춘천지구 전투는 6ㆍ25 전쟁 시작 후 승리한 첫 전투이기도 합니다.

이 전투는 큰 규모의 전투는 아니었지만 만약 춘천이 북한군에게 점령됐더라면 전쟁의 흐름이 크게 달라졌을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의 역사도 바뀌었을 거라고 평가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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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판]

The Chuncheon Victory Turns the Tide

As the month of June began in 1950, the South Korean military saw the signs of an imminent invasion by the North, and thus stopped issuing leave for soldiers and maintained a heightened alert. However, as weeks passed without anything happening, and as the farming season approached, the Army headquarters reversed its decision and allowed leave exactly one day before the invasion began, on June 24th.

So on the day of the invasion on the 25th, each unit had only about 1/3 the normal number of soldiers. However, the commander of the 6th Infantry Division in Chuncheon, Kim Jong Oh, felt uneasy considering the situation, and did not reverse the order banning all leaves.

On June 25th, the North Korean military plan was to send the 2nd Infantry Division to the Chuncheon area and complete the invasion of Chuncheon on the same day, and send other units to Injae and Hongcheon to block the retreating path of the South Korean 6th Infantry Division.

However, due to the fierce resistance put up by the 6th Infantry Division, the North Korean forces were unable to fulfill their plans. In this Battle of Chuncheon, the 6th Infantry Division fought for three days (June 25 to 27), including handto-hand combat, and did not allow Chuncheon to fall into enemy hands, putting a snag in the North Koreans’ plans, and also earning time for the reinforcement of the Han River defensive perimeter and the arrival of American forces.

Simply put, this battle resulted in changing the flow of the Korean War from the beginning. Behind the victory of the battle which decisively changed the outcome of the war at the most crucial time through a decisive military victory, was a South Korean force half the number of the North Koreans, led by soldiers from the Chungsung Artillery Unit who destroyed an enemy division and became a legend, and the 11 soldiers who became human bullets, as well as the brave actions of 2nd Lt. Shim Il who followed the Bukhan River streams to locate the North Korean self-propelled artillery and destroyed them with grenades and Molotov cocktails.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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